글쎄요
글쎄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6.0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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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하루의 시작은 공원 한 바퀴 돌고 오는 게 일상이다. 동트기 전 어둑 새벽이지만 눈 비비며 부스스한 차림으로 나서니 모자는 필수다. 가로등 불빛이 대낮 같아도 마스크로 얼굴까지 가리면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지나치니 좋다.

도시 한가운데 조성된 곳이라 새벽잠이 없는 어르신들이 열에 여덟은 된다. 이 시간대에 종종 대면하는 아저씨가 있다. 새벽같이 나와서 따뜻한 물도 준비해 놓고 오디오 담당에 주위 청소까지 하며 궂은일을 도맡아 솔선수범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70대로 보이지만 이곳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들리는 말로는 홀로 근근부지 벌이하며 산다고 하는데 옷 갖춤새는 늘 깔끔하다. 그는 보건체조가 끝나면 구석구석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게 아침 운동의 끝마무리인 듯하다.

내게도 말을 걸거나 갑자기 등 뒤에서 어이하면 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 했다. 운동에만 열중하고 싶은데 오나, 안 오나, 살피게도 된다. 올 기미가 보이면 다른 운동기구 쪽으로 슬쩍 피할 때도 있지만 훌라후프를 돌릴 때라든지 자갈길 걸을 때는 서로 대면 할 수밖에 없는 근거리라 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저씨가 내게 흔히 하는 말 중에 운동을 열심히 하니 날로 건강해 뵙니다라든가 몸이 유연합니다등의 말을 건네면 싫지는 않은데 말 받기가 괜스레 불편스럽다. 오늘 새벽에도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와서 뜬금없이 평상시 뭐하면서 지내세요?” 하지 않는가. 오롯이 내 한 몸만 위한 나만의 시간인데 방해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남의 취미 따위를 묻는 게 성가시기도 해서 선을 가르고 싶은 마음에 툭 내뱉듯이 글 써요했다.

에구 여사님! 지나가는 인사말인데 글쎄요’, 라니, 참 냉정하시네. 몸이 약해 보여도 운동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아 힘내라고 늘 응원 하는데.”

순간, 훌라후프가 균형을 잃어 밑으로 처지며 요동쳤다. 얼굴 마스크 때문에 말이 잘못 전달된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마땅찮다고 허울 좋은 명분으로 따돌리고 싶었던 얄팍한 속내와 팍팍하게 메마른 인간성이 부끄럽다. ‘치근거리지 마요. 이래봬도 난 작가라고요.’ 라며 고상한 척, 자처한 나, 글 쓴다고 내세울 만큼 문학적 소양이 갖춰있기는 한가.

글쎄요자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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