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보도 자제’
시작부터 ‘보도 자제’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9.06.04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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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늦은 오후. 갑작스레 휴대전화 알림음이 연신 울려댔다.

확인해보니 메신저 앱의 ‘제주동부경찰서 기자단’ 단체 대화방에 여러 개의 메시지가 올라와있었다.

내용은 ‘실종자 관련 수사 중 살인 혐의점 발견…경찰, 엠바고 요청’.

그랬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이슈화 된 ‘전 남편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의 첫 언론 대응은 시작부터 ‘보도 자제’였다.

이상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실종자에 대한 수사 도중 비교적 빠르게 타살 정황을 확인했고, 육지에 있던 용의자도 이미 검거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경찰은 왜 언론 보도를 기피하는 걸까.

공교롭게도 언론에서 이번 사건을 인지하기 불과 나흘 전,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피의사실공표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수사기관이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을 자의적으로 언론에 알리는 것에 대한 엄격한 규정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검찰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경찰에 요청했다’거나 ‘실무자들은 취재에 응하고 싶은데 위에서 막는다’ 등의 얘기가 들려왔다.

과거사위의 발표 직후 경찰의 엠바고 요청,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취재 비협조는 우연일까.

경찰의 이런 태도는 유족과 기자들을 한 자리에 모여 놓고 브리핑을 여는 ‘촌극’으로 이어졌다.

기자단은 유족들이 보는 앞에서 사건 경위와 시신 유기 장소 등을 물어볼 수 없다며 브리핑을 보이콧했다.

경찰은 ‘계획범죄’ 등 자신들의 주장이 보도되길 간절히 바라는 유가족들의 비통한 마음도 외면한 꼴이 됐다.

박기남 서장은 3일 ‘돌발 브리핑’을 열고 “달라진 사법 환경, 그리고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피의사실이 공표되는 범위를 넘어서 보도되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충분히 따르고 있을 진 몰라도 사건 자체에 대한 보도와 유가족들이 언론을 통해 밝히고 싶어 하는 주장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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