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기획]세계 호령했던 대제국의 수도, 흔적조차 사라졌더라…
[제주일보 기획]세계 호령했던 대제국의 수도, 흔적조차 사라졌더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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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중세 몽골의 수도 하라호름과 에르덴 조
넓은 벌판 너머에 있는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오르혼강. 옛 몽골 제국의 영화를 지켜본 강이기도 하다.
넓은 벌판 너머에 있는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오르혼강. 옛 몽골 제국의 영화를 지켜본 강이기도 하다.

몽골을 두 번째 갔던 1992, 당시 몽골답사는 칭기즈칸의 유적지와 몽골의 옛 수도인 하라호름(Karakorum·카라코룸이라고도 함)을 가는 것이라 잔뜩 기대했었습니다.

칭기즈칸의 여름궁전 터에 세워진 기념 비석.
칭기즈칸의 여름궁전 터에 세워진 기념 비석.

언더르항과 델게르항을 돌며 칭기즈칸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곳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옛 자취가 하나도 남지 않은 넓은 초원에는 몽골제국의 역사서인 원조비사(元朝秘史) 완성 7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 세워진 비석이 우뚝 서 있습니다. 2m 높이 기념비의 전면에는 칭기즈칸의 초상이 부조됐고 다른 부분에는 8마리 말에 올라탄 기마병 모습이 약화로 새겨졌습니다.

몽골 대표 유산인 빈데르바위에 새겨진 아른거리는 문양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유적지를 갈 때마다 사진 거리가 없어 실망했는데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일까라는 걱정을 하며 하라호름으로 향했습니다.

몽골은 유목 민족이라 중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화려한 유적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설마 하라호름마저 그럴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라호름은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380떨어진 오르혼강 유역에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태종(太宗정종(定宗헌종(憲宗) 시대의 수도 였답니다. 중국 문헌에는 객날화림(喀楋和林), 또는 화림(和林화령(和寜)등으로 표기됐답니다.

1235년 몽골의 제2대 황제인 태종 오고타이 칸에 의해 몽골 고원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오르혼강 상류에 건설됐고 이후 헌종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걸쳐 몽골 제국의 수도로 번성하며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사절·전도사·상인 등이 모여들기도 했답니다(최서면의 몽골기행). 이후 쿠빌라이 칸 때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긴 뒤에는 몽골의 옛 수도, 또는 화림행성(和林行省)의 소재지에 불과한 지방도시가 됐답니다. ()이 멸망하고 북원(北元)이 일어났을 때 다시 몽골의 수도가 됐으나 그 뒤로는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에르덴 조 사원 성벽에 세워진 흰 첨탑.
에르덴 조 사원 성벽에 세워진 흰 첨탑.

1889년 고고학자 아드린체프가 라마 사원인 에르덴 조’(Erdene Zuu) 근처에서 폐허 흔적을 찾아내기 전까지 누구도 이 하라호름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 했답니다. 정확한 위치는 1890년에야 밝혀졌는데 이 때 발굴된 문서에 따르면 1215년과 1268년 큰 화재가 있었고 1380년과 1466년 두 차례 중국인에 의해 크게 파손됐답니다. 1238년 왕궁의 규모로 그 번창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답니다. 왕궁은 투멘암가라 불렸는데 위대한 평안의 궁전이란 뜻이랍니다. 객실은 64개의 기둥이 받쳤고, 바닥은 녹유(綠油)가 칠해진 도판(陶板)이 깔려 있었답니다.

역사 자료를 뒤적이는 동안 하라호름에 도착했습니다. ‘몽골 제국의 수도였으니 위풍당당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수도다운 모습은 폐허이건 잔재이건 남아 있겠지싶었지만, 그 기대는 무너지고 그저 허무함만 남았습니다. 옛 영화는 자취도 찾을 수 없고 그저 에르덴 조 사원과 이 터의 유일한 유적인 귀부(龜趺)만 있을 뿐입니다.

하라호름 왕궁 터 단서인 귀부(龜趺).
하라호름 왕궁 터 단서인 귀부(龜趺).

하라호름 도시는 1948~1949년 러시아·몽골 조사단에 의해 발굴이 이뤄졌는데 북서에서 남동은 2.5, 폭은 1.5의 불규칙한 장방형의 도시였던 것으로 추정했답니다. 현재는 관개(灌漑)시설과 큰 비석을 받쳤던 귀부, 그리고 에르덴조 사원만이 당시의 영화와 규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석 사원이란 뜻을 지닌 에르덴 조 사원은 1586년 세워졌다고 합니다. 가로·세로가 각각 400m이고 1만명의 라마승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지금은 몇 채의 건물과 귀부, 등잔대 등이 남았습니다. 하얀 성벽 위에는 108개의 스투파가 서 있습니다. 스투파는 첨탑을 말하는데 국가나 종교에 있어 중요한 인물의 무덤 기능을 하고 있답니다. 우리 불교의 사리탑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전 세계를 호령했던 국가의 수도가 이렇게 허망할 수 있을까.’

씁쓸한 마음을 안고 사원을 나와 남쪽으로 조금 가니 산자락에 철망이 처져 있고 그 안에 남근석(男根石)이 있습니다. 이 남근석은 여성의 둔부처럼 생긴 산을 향하고 있는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빌기도 한답니다.

귀국 후 2년이 지나 다시 하라호름을 찾았을 때 이 남근석이 사라져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인근에 있는 에르덴 조 사원과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07년에도 하라호름을 찾았습니다. 달라진 점이라고 산 위에 칭기즈칸 동상과 몽골이 세계를 호령했던 시대를 조각한 기념탑이 세워졌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아직도 하라호름은 발굴 중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달리는 차 안에서 멀어지는 에르덴 조 사원을 바라봤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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