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남겨진 詩…가슴에 품다
노래로 남겨진 詩…가슴에 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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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1992)

가수 김현식 어머니가 낸 유고시집
아들의 못다한 꿈 이뤄…절판 아쉬움
김현식의 유고앨범(제6집, 1991) 표지.
김현식의 유고앨범(제6집, 1991) 표지.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살림, 1992) 표지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살림, 1992) 표지

무대공포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심적으로 부담스러운 분들이 계실 게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필자도 남들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게 영 불편하다. 말을 하는 것도 그런데 노래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게 되면 항상 좌불안석이 되곤 했다.

학창시절 개강파티다 종강파티다 해서 편안한 과 친구들과 모임을 가질 때도 그 부담감은 여전했다. 돌아가며 노래라도 한 자락해야 하는 분위기면 내 순번이 오기 직전에 소주라도 거푸 2~3잔 정도는 해야 비로소 용기를 내서 일어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 불편하기만 했던 노래 부르기가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어 조직생활의 윤활유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사연은 이렇다. 졸업반 시절 가까운 후배가 지원하는 회사에 함께 원서를 냈다가 덜컥 합격해서 예정에 없던 회사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 해 연말 부서 회식이 있었고, 선배가 신입이니 노래 한 곡 정도는 준비해 가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해줬다. 거의 대부분이 손윗 분들이라 분위기에 맞을 만한 노래로 나름 선곡에도 신경을 썼다.

요즘 같이 노래방 기기가 있는 시절이 아닌 관계로 혹여 가사를 까먹을 때를 대비해서 컨닝페이퍼도 준비했건만막상 노래 지명을 받을 무렵에는 필자도 술이 좀 된 상황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으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다음 소절이 초반부와 중반부 이후가 다른데 부르다 보니 좀 이상했다.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다. 노래를 하면서 미리 준비한 그 쪽지(?)를 찾아보니 그마저도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거기서 사달이 났다.

그 자리를 함께 한 상사들과 선배들은 내가 부르는 노래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금방 간파했다. 종반부 마무리를 할 무렵이면 다 함께 목청을 돋워 가도 가도를 외쳤고 술에 취한 필자는 계속 이어 부르면서 끊어진 테잎이 되었다. 목이 걸걸해질 무렵 주변을 돌아보니 20여 명이 다 누워 있었다. 웃다가 쓰러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 보니 다들 필자를 대하는 태도나 눈빛이 한결 더 살가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부터 퇴사할 때까지 내 별명은 가도였다.

다들 눈치 채셨을 게다. 그 노래는 이별의 종착역이다. 원곡은 손시향 선생이 불렀지만, 내가 알게 된 건 당시 유행하던 김현식(1958~1990) 버전이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1980년대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가수인 그가 남긴 노래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남긴 글들을 모아 어머니가 낸 유고시집이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살림, 1992)이다. 그 시집의 맨 마지막 부분인 추억만들기에 수록된 25수의 시는 모두 그가 발표한 음반에 수록된 노랫말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이 시집을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든 가사집이라 폄하한다. 하지만 입버릇처럼 시집을 한 권 내고 싶다고 한 아들의 꿈을 못 들어 준 게 한이 되었던 어머니는 그저 아들의 노래와 함께 그가 남긴 시들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성공하셨다.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뿐만 아니라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여전히 많다. 한 가지…절판되어 이제는 만나기 힘들어졌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책 표지 뒷면.
책 표지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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