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잃은 제주경제
봄 잃은 제주경제
  • 정흥남 편집인
  • 승인 2019.05.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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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쓰는 사자성어 가운데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말이 있다. 실력이나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부린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의 출발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로 거슬러 간다. 진의 장수 위주와 선진이 위(魏)나라 오록성을 침입할 때 선진은 군사들에게 산이나 언덕을 지날 때마다 기를 꽂으라고 했다. 그 결과 진의 군대가 지나간 숲에는 수없이 많은 깃발이 나부꼈다.

진나라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 백성들이 성 위에 올라가 셀 수 없이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두려움에 떨면서 달아났다. 오록성의 함락은 두말할 나위 없다.

허장성세는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말로 통칭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실속이 없다는 말이 따른다.

지금 제주경제가 이를 닮아 간다. 연간 7% 내외 성장률로 상징되는 통계수치만 놓고 본다면 양호한 성장세와 실적을 거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어가 보면 실상은 녹록지않다.

올 1분기 제주지역은 산업생산과 수요 등 전 부분에서 부진을 면치 못 했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세를 타며 호황을 누렸던 건설시장은 어려움을 넘어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미분양 주택은 연일 신기록 행진이다.

# 이 뿐만 아니다. 제주경제의 맏형격인 제주관광 시장도 불안불안하다.

지난해 제주 방문 관광객은 1308만9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3.2%(43만3000명) 줄었다. 관광산업을 지탱하는 내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것은 2004년 이후 14년 만이다.

올해 들어 4월말까지 내국인관광객은 420만405명(잠정치)으로 전년 동기(418만6770명)보다 0.3%(1만3635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월별 증가률은 2월 11.9%, 3월 0.4%로 둔화되더니 4월에는 –6.0%를 기록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도내 기업들이 전망하는 가까운 미래의 경제상황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주상공회의소가 지역 102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 2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 기준치=100)는 93으로 지난 1분기 대비 1포인트가 하락하면서 최근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던 2014년 2분기(92)와 1포인트 차를 보였다.

전반적인 제주경기의 침체는 인구증가까지 더디게 만들었다. 올 4개월간 제주 인구는 1457명 증가하며 월평균 364명 정도 늘었다. 지난해(월평균 842명 증가)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지역 자생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 “제주는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과 저임금을 양산하며 소외된 계층의 고통을 발판으로 사회적 부를 만들어왔다. 침체의 그늘이 이들을 먼저 압박하고 있다.”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이 최근 도의회 임시회 개회사를 통해 진단한 제주이 단면이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경기침체를 탈피하기 위한 제주도정의 과감한 변화를 주문했다.

최근 수년간 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던 제주경제는 올해 4%대 이하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믿을 게 안 된다. 거품이 잔뜩 끼었다.

현실을 타개할 다양한 대안들이 나오지만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모두 공무원들의 책상에서만 오르락내리락 한다. 관광산업의 질적 성장정책만 하더라도 수년 째 겉돌 고 있다. 적어도 제주에서 발생한 경제·관광의 결실을 제주안에 머물게 해야 하지만, 그 결실은 제주 땅을 스친 뒤 곧바로 바다건너 역외로 빠져나간다. 외부종속 경제시스템이 개선될 조짐이 없다. 되레 외부 대자본에 의해 더 심화되는 모양새다.

허장성세 제주경제의 민낯이다.

정흥남 편집인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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