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으로
기억 속으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2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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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미국 앨라배마대 부교수·논설위원

기억(memory)의 공간에 촘촘히 쌓인 과거를 한 겹 들추어 본다.

첫 페이지를 펼쳐 기쁘다 싶으면 다음 장은 아프고, 이은 구절은 부끄럽다. 그곳엔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라 외치며 지우고 싶은 나만의 치부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악몽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가끔 상상은 뻗치고 뜬금없다. 삶의 모든 기억이 느닷없이 압수 수색을 당해 케케묵은 감정과 생각까지 탈탈 털린다면?

속내에 암약하던 낯 뜨거운 잡생각. 누군가에게 속절없이 품었던 사랑 혹은 증오. 차마 뱉지 못해 숨죽여온 거친 말. 드러난 빼박증거는 차고 넘쳐 추악한 인간이란 주홍 글씨가 각인될 듯하다. ‘기억 포렌식기술의 진보는 아직 젬병이라 한시름 놓는다.

얼마 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 별판은 기억의 과학을 주제로 다뤘다. 삶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기억에 관한 발견은 흥미롭다. 사람의 두뇌는 대략 2.5페타바이트의 기억 용량을 갖는데 TV 드라마 3억 시간을 저장할 수 있는 크기와 맞먹는다. 기억은 대략 태아기 8~9개월 사이 처음 움트고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 멈춘다.

연구는 발전을 거듭해와 기억을 담당하는 두뇌 기관과 위치까지 알아냈지만 정작 추궁해 온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가?’라는 기억 형성 원리에 대한 답변은 오리무중이다.

스마트폰과 검색 알고리즘이 쌍끌이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관심사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은 시간당 평균 열 한 차례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미국 대학생의 20%가량이 수업 시간에 문자, 게임, 소셜 미디어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만한 주의력이 지속되면 두뇌의 사고(思考) 활동이 추동을 상실하고 결국 기억 형성과 활성화에 해를 끼친다는 의견이 많다.

기억이 도맡았던 영역을 디지털 기기가 대체하고 있고 인공지능의 진화로 추세는 가파르다.

전화번호는 스마트폰이, 목적지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준다. 궁금하면 맨 먼저 구글(Google)이나 네이버의 검색창을 찾는다. 기억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수렵과 열매 채취로 끼닛거리를 찾던 원시 인류에게 언제’, ‘어디서를 기억하는 건 곧 생존이었는데 버금가는 역할은 이제 스마트폰의 몫이다.

그래서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라 불리는 신인류의 출현을 말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시인 오스카 와일드는 말한다. 기억은 늘 지니고 다니며 채워지는 일기장 같은 것이라고.

기억의 공간에 쌓인 삶의 이야기는 윤색 없는 민낯이다. 거기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찰기, 윤기, 온기도 오롯이 남아 있다.

창문 너머 어렴풋한첫사랑 얼굴이 보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지막한 음성도 들린다. 허기지면 군침 돌고 옆구리 시리면 그리워진다.

오감(五感)으로 채집된 삶의 치열한 질곡과 융성을 기억으로 간직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에서 화자(話者)의 어린 시절 회상을 촉발한 것은 홍차에 찍먹한 마델린 쿠키의 맛. 거기 어우러진 향이었다.

디지털에 매몰돼 왜소해진 기억의 몰골에 처연하고 세상도 말랐다. 어쩌면 짬을 틈타 기억하는 연습이 간절한 시기다.

그 때 그 곳에 남은 청춘을 힐끗 둘러보고 나면 수분크림의 효과처럼 마음은 뽀송뽀송하고 눈가는 촉촉해질 듯하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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