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섬
아내의 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2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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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제주어보전육성위원. 시인)

남녀가 하나의 평생을 만들면서 살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어찌 살았던 간에 호적에 부부로 등재하여 50년을 살고 있다면 마땅히 상을 주고 축하해도 될 만한 인내의 표상이다.

결혼하기 전의 연애는 현실이 미래이므로 짐이 없어 힘이 넘치기에 젊음도 자산이므로 얼마나 달콤했던가. 그래서 평생을 허락해준 아내의 고마움에 다이아반지는 못 사 주었어도 뜻이 깊은 시는 써서 보관하고 있다.

제목은 아내의 섬으로 망망대해에 섬이 없다면 나의 물새 어디서 살리.’로 암시하는 바가 깊다. 그래도 서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방향이나 방법이 달라서 잊을만하면 철천지 원수처럼 싸우기도 한다. 아니다, 싸운다.

아무리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싸운 뒤에 요리를 한다고 칼을 들고 고등어를 토막 내는 아내를 보면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젊은 시절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으니 사글세로 방 한 칸을 마련하여 사느라고 좁은 방에 어쩔 수 없이 등 돌리고 자지만 싸웠다는 원망보다는 법으로 허락해 주신 운우의 정이 먼저 달려오므로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할 일이 많아 힘겨우면 또 다투게 된다. 중년이 지나면 화해가 그리 쉽지 않다. 젊었을 때는 아내의 미모만큼이나 마음도 착해서 그런대로 넘어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위엄이 넘치는 아내가 오히려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남자의 자존심이 말이 아닌 경우가 많아진다.

지상의 생명체의 탄생을 관장한 신이 직접 관여하기가 너무 바빠서 암수를 따로 만들어주셨으니 부부는 한 방에서 자야 되는데 성질난다고 딴방에 가버리니 부부싸움이라는 시를 증거로 ‘20년을 함께 산 아내를 강간해야 합니까!’ 라고 썼던 적도 있다. 30년은 환갑이 지날 즈음이라서 별효과가 없을 것 같다.

평생 가난으로 헌신했던 자신이 억울해서 펑펑 울다가도 "¨ 먹씩일에 가려고 하면 양지에 로션을 바르는데 아내도 여자라서 화장하면서는 울지 않는다. 낡은 집 대문은 페인트가 더 든다고 되도록 짙고 굵게 정성껏 바를 때를 훔쳐보면 못난 남편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당신이라는 시에는 긴 머리 하거나 짧은 머리 하거나 다 고와서 하품하는 모습까지 아름답다고 했더니 미친놈이라고 욕을 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늦잠 자고 일어나서 부엌에 가보면 오래 전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허름한 옷으로 신분을 감추고는 밥을 짓는 광경은 지상에서 펼쳐지는 천국이라서 어쩌면 달아날 수도 있다는 조급함에 뒤에서 얼른 안았더니, 뜨거운 국 쏟는다고 그 튼실한 엉덩이로 나를 밀쳐낸다. 누구의 아내이든지 여인의 행색이나 표정을 보면 그 남자의 성품이 절로 보이게 마련이다. 아내에 대한 마음가짐으로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남겨주신 명언으로 웃어도 불쌍헌 건 이녁 각시여.’ 가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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