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돌담 이야기
제주 돌담 이야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1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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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철 자연사랑미술관 관장

1970년 중반 무렵 한 일본 사진가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이도 같은 터라 친구 같은 기분으로 술도 한 잔하고 그가 제주에서 찍은 사진과 제주 자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당연히 한라산이나 오름, 폭포 등 제주 관광지에 대한 이야기, 특히 한라산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듣던 그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그는 제주는 참으로 신비롭다. 자연도 그렇지만 그보다 사람들 사는 모습, 그리고 조상이 남겨놓은 삶의 흔적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당신은 사진 찍을 소재가 많아 좋겠다고 한다.

그는 제주 자연보다는 제주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흔적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제주 오름에 있는 산담들을 보는 순간 전율을 느낄 정도의 감격이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섬 전체가 마치 한 가닥으로 이어진 것처럼 쌓아진 밭담은 이 섬에 부는 바람결과 같은 느낌이라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 필자마저 흡입되는 듯했다.

사진을 찍으며 제주를 기록한다는 필자가 그의 말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항상 곁에 있으니 그 것이 귀중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한 외국 사진가의 눈길에 의해 그 사실을 발견하게 돼 한편으론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서울 모 신문사 사진부장이 자사 비행기를 타고 한라산과 성산 등 제주의 여러 모습을 촬영하러 내려왔을 때 동행한 적이 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제주시 구좌읍 둔지오름 상공을 지날 때였다. 그 선배는 오름 자락에 있는 마을 공동묘지를 내려다보더니 놀라며 저것이 뭐냐고 물었다. “묘지들이라고 답하자 선배는 다시 묘지 주변에 있는 돌담이 뭐냐는 것이다. ‘‘산담이라고 간단히 답했는데 그는 오름을 몇 번 돌며 산담을 한참 찍었다. 저녁을 함께하면서 그는 오늘 참으로 귀중한 것을 봤다며 산담 이야기를 했다. “제주에 참 많이 왔는데 산담을 처음 봤다. 너무 신비롭다는 것이다.

과거 제주를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 나타나듯 마치 섬 전체를 둘러 쌓은 것처럼 보이는 밭담은 그 끝이 안 보일 정도고 그래서 제주 섬은 차를 타고 가면서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돌담이라고 했다.

돌의 고장 제주. 화산섬이고 섬 자체가 돌로 이뤄졌기에 우리 선조들은 그 돌을 이용해 여러 삶의 방식을 만들었다. 초가집에 울타리를 두른 게 울담이다. 초가집이 보일 듯 말 듯한 높이로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았다. 밭의 경계 또는 우마나 바람을 막기 위해 둘러 쌓은 것이 밭담이다. 자연석을 이용해 길게 쌓아진 밭담은 한쪽을 잡아 흔들면 끝까지 흔들려야 잘 쌓아진 것이란다. 산담은 우마와 들불로부터 묘()를 보호하려고 쌓은 것이지만 그 쌓은 방식은 토속신앙과 떨어질 수 없다.

울담과 밭담은 목적이나 형태가 비슷한 것이 육지부, 특히 섬 지역에 가면 볼 수 있지만 산담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라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물론 국내 사람들도 제주 산담을 보면서 선조들의 생활 지혜에 놀란다.

산담 내 동자석이란 석상도 있고 망주석도 있고 신이 드나드는 시문이 있어 신앙적 기능까지 갖췄다. 어찌 보면 가장 제주다운 문화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학자들도 있다.

그랬던 제주 섬이 1970년대에 들어서며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또 밀감밭 조성으로 대대적인 방풍림이 식재되면서 농지정리와 함께 밭담 형태는 서서히 변해갔다.

거기다 전두환 정권 때 밭담이 보기 싫다는 한 마디에 일부 지역 밭담을 허물고 새로 쌓았던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2014년 제주 밭담이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돼 척박한 땅을 일구며 나온 돌들을 쌓아 올린 선조들의 지혜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도민뿐 아니라 관광객과 외국인들도 제주 돌담에 큰 관심을 보인다. 단순히 보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닌 돌담 쌓기 체험과 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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