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창'과 정치인의 품격
'달창'과 정치인의 품격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9.05.15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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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을 지낸 임영신(1899~1977)은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원이다. 1945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정당인 조선여자국민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유명한 일화다. 당시 상공부 남자 직원들이“앉아서 오줌을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을 수 없다”며 반발하자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 동안 왜놈들과 싸워왔다. 또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 누는 사람 이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도 나에게 결재를 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은 지금 당장 사표를 내라”고 일갈을 날렸다. 그는 우리나라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정치는 일반적으로 언어로 이뤄지며 ‘힘’있는 정치인의 한 마디는 어떤 행동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킨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정의하는 ‘정치언어’의 정의는 정치에 사용되는 언어 또는 정치적 의미를 담은 언어를 말한다. 정치인은 정치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정치언어를 사용한다. 정치 선진국에서 힘 있는 정치인이 되는 첩경은 정치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정치언어의 효과적 사용을 통한 메시지 전달력은 정치인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독립선언문, 혁명선언문, 자유와 권리에 대한 선언, 평화를 위한 선언, 반체제 선언, 선전포고문, 결의문은 모두 인류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온 행동을 이끌었다.

우리나라 제1야당의 원내 대표라면 ‘힘 있는 정치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가 최근 한 단어를 통해 우리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 원내 대표는 지난 11일 대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장외집회에서 “(대통령 특별대담 때 질문자로 나선) KBS 기자가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며 “기자가 대통령에게 좌파독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도 못 하느냐”고 발언한 것이 보도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자도 솔직히 이 때까지‘달창’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후속 보도 등을 통해 ‘달창’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알았을 때 식겁했다.
‘달창’은 ‘달빛창녀단’의 준말로‘달빛기사단’이라 불리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일부 극우 네티즌들이 속되게 지칭하는 용어였다.

나 원내 대표는 이후 별도 입장문을 발표해 “문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자를 지칭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특정 단어를 쓴 바 있다. 인터넷 상 표현을 무심코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결코 세부적인 그 뜻을 의미하기 위한 의도로 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달창’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알지 못했다고 사과했으나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국가의 제1 야당 원내 대표가 여성 비하 단어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했다는 것과 함께 이를 인터넷 상의 표현을 무심코 사용했다는 해명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정치언어란 자신의 정치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싫어하는 단어지만 국회의원은 ‘공인(公人)’이다. 정치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헌법기관’이다.
나 대표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정치용어는 지면에 담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는 현 정부에 대한 호ㆍ불호를 떠나 한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의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난 13일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얼마든지 부르세요. 달창이라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금부터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한다. 제가 나 의원보다 ‘문빠달창’이라는 말 먼저 썼다”라며“저는 ‘달창’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아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오늘도 변함없던데 ‘달창 뜻’을 치니 ‘닳거나 해진 밑창’이라고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네이버에 ‘달빛 창녀’라고 나왔었다면 혹은 그 설명이 있었다면 전 결코 ‘달창’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 저는 잘못한 것이 없다. 달창을 찾아보고 사전적 의미대로 해석한 것이 잘못인가? 그럼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네이버 잘못인가?”라고 했다. 이어 “저를 ‘달창’이라고 하신 분들의 ‘달창’과 제 ‘달창’은 많이 다르다. 사과니 사죄니 기가 막힌다”고 적었다.
한 정당의 대변인까지 맡았던 정치인이 모든 책임을 네이버에 넘기고 있다. 가관이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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