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에 물을 주며
모종에 물을 주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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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청보리 물결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황금 옷으로 갈아입었다. 노란꽃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유채도 알곡으로 여물었다. 오월은 결실을 위한 일손도 재촉해야 하고, 챙겨야 할 행사도 많은 달이다.

몇 가지 모종들이 인연이 되어 텃밭에 심은 지 며칠이 지났다. 개성이 다른 어린 것들을 매일 들여다보며 물을 준다. 뿌리가 잘 내리고 병충해의 피해를 견디어내야 할 텐데 하는 염려도 있다. 바람에 쓰러질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게 대견하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잘 자라 훗날 올망졸망 열매를 맺어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것들이 식탁위에 오를 때를 상상하면 벌써 행복해진다. 좋은 땅에 씨를 뿌려야 몇 십 배의 수확을 얻는다는 성경 구절이 있지만, 그 좋은 땅이 바로 정성과 사랑이다. 부모가 자식을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듯이 저 어린 것들도 정을 주다보면 무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4대의 가족이 다 모였다. 일곱을 키우느라 고생했던 지난 일들은 다 잊으신 채 자식, 손자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듯 부모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큰 손자가 자식을 낳았으니 그 또한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효도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고 각자의 역량에 따라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도인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더욱 그렇다.

부모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이 피어나자 어버이 은혜 노래를 입을 모아 부른다. 감사의 편지글 낭송에 잠시 숙연해지고 선물 봉투가 전해진다. 세월 속에서 조금씩 더 작아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부를 수 있게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하다. 부디 건강관리 잘 하셔서 오래오래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부모님께서는 형제자매가 의좋게 잘 지내니 고맙다며 사후에도 지금처럼 잘 지내라고 당부하신다.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어린이날 축하로 돌 지난 손자와 어린 조카를 위한 선물이 오고가니 가는 정 오는 정이 층층이 쌓인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의 추억들은 잊을 수가 없다. 고사리 손으로 만든 종이 카네이션과 정성으로 써 내려간 손 편지에는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그 한 마디 때문에 가슴이 뭉클하고 힘이 났었다. 어느 해에는 초임 제자들이 대학생이 되어 맥주와 선물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그 때의 감동과 짜릿함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스승의 날이라고 안부전화, 마음의 선물,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받을 때마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 그 교실에 다시 선다. 35년 전의 추억들을 꺼내며 감사하다고 할 때는 오히려 제자에게 경외감이 든다. 고마움의 유효기간은 없는지 필자에게도 고마운 스승님이 계시다. 감사인사를 제대로 못 드리고 있으나 가슴속에서 늘 잊지 않고 있다.

오늘도 텃밭의 모종에 물을 주며 부모님과 스승님의 은혜 생각한다. “부디 잘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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