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초원은 어디 가고 모래만 가득
푸른 초원은 어디 가고 모래만 가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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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몽골에서 가장 긴 모래 언덕 고비 알타이(下)
몽골에서 가장 긴 모래 언덕이 있는 몽골 엘스의 중간 지점. 모래 능선 아래 초원과 모래벌판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수 많은 양과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몽골에서 가장 긴 모래 언덕이 있는 몽골 엘스의 중간 지점. 모래 능선 아래 초원과 모래벌판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수 많은 양과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뜻이 맞고 또 같은 생각(취미)을 가진 사람들끼리 여행해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사막을 달리고 있습니다. 사막으로 들어갈 때는 가깝게 생각했는데 돌아올 때 보니 꽤 많이 들어갔던 모양인지 한참을 달려도 강을 지나지 않습니다. 달리는 차 속은 더 있고 싶어 하는 제 눈치를 보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언덕을 넘고 내려서니 넓은 모래벌판과 초원이 뒤섞인 듯한, 예전에 초원이었다가 모래가 덮여버린 아주 독특한 지대가 나옵니다.

사막지대는 그 해 날씨에 따라 지형에 변화가 많이 일어난답니다. 고비사막에 갔을 때도 운전사가 이전까지는 분명 이 곳에 모래 능선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며 모래 언덕을 찾아 한참을 초원을 헤매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몰아쳤으면 그 높은 모래 언덕을 옮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자연의 위력 앞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임시 수리를 했다는 차 한 대가 위태롭게 달려가다가 초원지대로 방향을 바꾸더니 잠시 멈춥니다. 운전사가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좋다고 합니다. 러시아 지프는 뒷좌석에 앉으면 사방을 둘러 볼 수가 없는데 내려 보니 정말 장관입니다.

우리 차가 멈추자 모래 언덕에서 놀던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달려옵니다. 모래벌판 사이사이에 있는 초원에는 수 많은 양과 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지금 껏 어느 사막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도 오늘 고비 알타이 아이막에 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운전사의 말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자 마음속에 담았던 불편함이 풀렸습니다.

몽골 아이들이 모래 언덕 위에서 썰매를 타며 놀고 있다.
몽골 아이들이 모래 언덕 위에서 썰매를 타며 놀고 있다.

카메라를 메고 다시 사막 능선을 올랐습니다. 말을 타고 달려온 몽골 아이들이 따라 올라와 장난을 치며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사막에 사는 아이들은 모래 벌판이 바로 놀이터입니다. 썰매도 타고 씨름도 하고 별별 놀이를 다하는 아이들. 그 모습을 촬영하느라 정신없이 쫒아 다녔답니다.

오전에 꾸물거리던 날씨까지 화창하게 걷혀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까지 펼쳐져 얼마나 아름다운지 목이 바짝 말라도 물 마실 틈도 없이 이리 저리 뛰면서 모처럼 만난 모래 언덕을 실컷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가만히 지겨보던 울찌가 선생님은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서 매년 이렇게 몽골을 찾아와 사진을 찍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난데없는 질문에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울찌의 얼굴만 쳐다보다 나도 몰라. 자네가 오라고 해서 온 것 아니냐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몽골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브항 강(Zavkhan gol)을 따라 달리던 차는 중간에 묘한 모습의 오보(Ovoo)가 보이자 그 앞에서 멈춥니다. 장진(Janjin)오보라고 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수신(水神)에 제를 올리거나 씨름 선수들이 씨름복을 차려입고 절을 하는 곳이랍니다. 다른 지역 오보와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브항 강 인근에 있는 장진오보.
자브항 강 인근에 있는 장진오보.

수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무척 아쉽습니다. 몽골 엘스(els)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멀어져 가는 몽골 엘스 쪽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면서 내년에 다시 이곳을 찾아 며칠을 머물더라도 꼭 종주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귀국하고 1년 후 여름이 되자 친구 영선이와 사진을 좋아하는 한 후배와 다시 고비 알타이를 찾았습니다. ‘아름다운 호수를 거쳐 몽골 엘스로 가는 코스가 있다는 울찌의 말을 듣고 그 곳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울찌의 친구인 삐찌아가 코스를 잘 알아 동행했습니다.

호수에서 1박한 후 드디어 몽골 엘스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저 너머가 몽골 엘스 모래 언덕이다라고 설명한 운전사는 잘 달리던 차를 갑자기 세웁니다. 차가 모래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한참을 버둥거리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멀리 있는 몽골 유목민을 불러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가뭄으로 이 일대 초원이 사막으로 변해 길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모래가 날려와 초원을 덮어 양들도 풀을 찾아 멀리 헤맨다고 합니다. 그런 이러한 설명을 하며 모래를 파헤쳐 팔을 넣는데 제법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는 모래가 이 정도로 덮였다며 한숨을 쉽니다.

귀국하고 1년 후 다시 찾은 몽골 알타이에서 만난 몽골인이 가뭄으로 초원이 사막이 됐다며 모래를 파헤치고 있다.
귀국하고 1년 후 다시 찾은 몽골 알타이에서 만난 몽골인이 가뭄으로 초원이 사막이 됐다며 모래를 파헤치고 있다.

말을 이용해 겨우 차를 빼낸 후 왔던 길을 돌고 돌아 해가 질 무렵에야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같이 모래 언덕을 올랐으나 날씨가 흐려 예상했던 황금빛의 모래 언덕은 볼 수 없었습니다.

사막 가운데 있었던 에렝 노루(nuur·호수)도 바싹 말라 호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랜 가뭄에다 바람이 강하게 몰아쳐 주변에 있던 자브항 강도 모래 속에 묻혀버릴 정도입니다.

푸른 초원은 어느 곳에도 없고 모래가 덮인 몽골 엘스는 마치 죽음의 땅인 듯합니다. 참으로 힘들게 두 번이나 찾아 왔건만, 몽골 엘스는 선뜻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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