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떠난 日 군인의 평범한 삶
전쟁터로 떠난 日 군인의 평범한 삶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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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참전 일본군인 자료

출정 직전 가족과 찍은 사진·전별장 인상적
대구서 훈련 기록 편지·엽서 등 담겨 눈길 
유즈리하라 카츠로(讓原勝郞 1917~) 출정 가족사진.
유즈리하라 카츠로(讓原勝郞 1917~) 출정 가족사진.

지난해 8월에 일본 최대의 골동시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군장(軍裝)연구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소개할 때, ‘오는 11월에 그를 만나러 다시 도쿄에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매년 가을 도쿄 간다(神田)에서 열리는 고서축제에는 가능하면 참여하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소개로 알게 된 빅토리 쑈(Victory Show)와 일정이 겹치는 관계로 더욱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는 밀리터리 마니아(military mania)가 많기로 유명한 데 그들과 관련 판매상들이 함께 아사쿠사(浅草) 타이토간(台東館)에 모이는 축제가 이 빅토리 쑈이다. 지난 11월에 열린 게 제88회나 되니 상당한 내공이 쌓인 행사기도 하다. 매번 200여 개의 부스가 3~4개 층에 걸쳐 설치되는 밀덕들의 천국이었다.

2018년 11월 4일 일본 빅토리 쑈(Victory Show).
2018년 11월 4일 일본 빅토리 쑈(Victory Show).

온갖 군대 관련 자료들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묵은 것들 중에서도 우리네와 관련된 자료에 눈길이 더 갔다. 그러다 만난 게 일제 식민지 시대에 중일전쟁에 참전했던 어느 일본군인 관련 자료 뭉치였다.

그 주인공은 유즈리하라 카츠로(讓原勝郞 1917~?). 종이 뭉치 속 자료를 통해 본 그는 1917년에 태어나서 고등소학교를 졸업하고, 1938415일 보병으로 입대했다. 같은 달 20일 부산항에 도착해서 그날로 대구로 이동하고, 720일 일등병이 될 때까지 그 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 도착한 후에는 중대장이 서한을 보내 무사히 입영한 사실과 교육훈련 내용을 상세히 알리고 당사자에게는 비밀로 해 줄 것을 요청하고, 또한 매달 687전의 급료를 지불하는 상황을 알리면서 집에서 돈이나 물품을 송부할 때에는 자신과 협의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즈리하라 카츠로(讓原勝郞 1917~) 관련 자료 전부.
유즈리하라 카츠로(讓原勝郞 1917~) 관련 자료 전부.

58일자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조선의 1원짜리 지폐 1매를 동봉하고 귀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고 부탁하고, 515일자 편지에서는 대구는 벌써 더워서 아스팔트가 녹아 군화에 달라붙어 애먹었다고 적고 있다. 그 해 5월의 대구 날씨가 상상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더운 대구다.

중일전쟁으로 730일 대구를 출발, 인천항을 거쳐 상하이에 상륙한다. 이후 쑤저우(蘇州) 등을 거쳐 주로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세 번의 전투에 참가하고 19404월 상등병이 되었다. 그 해 일본으로 귀환해서 928일 소집해제 된다.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55월에는 방위소집 명령장을 받아 보충병(예비군)으로 소집되었다.

일련의 자료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한 일본인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그 중에 출정(出征)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전별장(餞別帳)이 가장 인상적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나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인물들은 표정이 다들 어둡다. 사지(死地)로 떠나는 이에게 드롭프스 한 상자, 사이다 한 병을 전별금으로 주는 지인들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까.

정치는 항상 거창하게 국익이나 애국을 논하지만, 그로 인해 죽어나는 건 늘 평범한 소시민들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유력인사나 그 자제들은 왜 그렇게 병역을 피할 수 있는 희귀병에 잘들 걸리는지다들 집안 내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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