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정 직전 가족과 찍은 사진·전별장 인상적
대구서 훈련 기록 편지·엽서 등 담겨 눈길
지난해 8월에 일본 최대의 골동시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군장(軍裝)연구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소개할 때, ‘오는 11월에 그를 만나러 다시 도쿄에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매년 가을 도쿄 간다(神田)에서 열리는 고서축제에는 가능하면 참여하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소개로 알게 된 빅토리 쑈(Victory Show)와 일정이 겹치는 관계로 더욱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는 밀리터리 마니아(military mania)가 많기로 유명한 데 그들과 관련 판매상들이 함께 아사쿠사(浅草) 타이토간(台東館)에 모이는 축제가 이 빅토리 쑈이다. 지난 11월에 열린 게 제88회나 되니 상당한 내공이 쌓인 행사기도 하다. 매번 200여 개의 부스가 3~4개 층에 걸쳐 설치되는 밀덕들의 천국이었다.
온갖 군대 관련 자료들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묵은 것들 중에서도 우리네와 관련된 자료에 눈길이 더 갔다. 그러다 만난 게 일제 식민지 시대에 중일전쟁에 참전했던 어느 일본군인 관련 자료 뭉치였다.
그 주인공은 유즈리하라 카츠로(讓原勝郞 1917~?)다. 종이 뭉치 속 자료를 통해 본 그는 1917년에 태어나서 고등소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4월 15일 보병으로 입대했다. 같은 달 20일 부산항에 도착해서 그날로 대구로 이동하고, 7월 20일 일등병이 될 때까지 그 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 도착한 후에는 중대장이 서한을 보내 무사히 입영한 사실과 교육훈련 내용을 상세히 알리고 당사자에게는 비밀로 해 줄 것을 요청하고, 또한 매달 6원 87전의 급료를 지불하는 상황을 알리면서 집에서 돈이나 물품을 송부할 때에는 자신과 협의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5월 8일자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조선의 1원짜리 지폐 1매를 동봉하고 귀한 것이니 잘 보관하라고 부탁하고, 5월 15일자 편지에서는 ‘대구는 벌써 더워서 아스팔트가 녹아 군화에 달라붙어 애먹었다’고 적고 있다. 그 해 5월의 대구 날씨가 상상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더운 대구다.
중일전쟁으로 7월 30일 대구를 출발, 인천항을 거쳐 상하이에 상륙한다. 이후 쑤저우(蘇州) 등을 거쳐 주로 경비임무를 수행하다가 세 번의 전투에 참가하고 1940년 4월 상등병이 되었다. 그 해 일본으로 귀환해서 9월 28일 소집해제 된다.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5년 5월에는 방위소집 명령장을 받아 보충병(예비군)으로 소집되었다.
일련의 자료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한 일본인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그 중에 출정(出征) 직전에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전별장(餞別帳)이 가장 인상적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나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인물들은 표정이 다들 어둡다. 사지(死地)로 떠나는 이에게 드롭프스 한 상자, 사이다 한 병을 전별금으로 주는 지인들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까.
정치는 항상 거창하게 국익이나 애국을 논하지만, 그로 인해 죽어나는 건 늘 평범한 소시민들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유력인사나 그 자제들은 왜 그렇게 병역을 피할 수 있는 희귀병에 잘들 걸리는지…다들 집안 내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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