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모래 속 숨어 있던 생명
메마른 모래 속 숨어 있던 생명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03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몽골에서 가장 긴 모래 언덕 고비 알타이(中)
모래 언덕에 올라 서자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모래 언덕에 올라 서자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몽골 하면 칭기즈칸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아마 고비사막이 아닐까 합니다. 기상예보 때 자주 언급되는 황사는 바로 이 고비사막에서 비롯됩니다. 고비사막에서 시작된 거센 바람이 중국 황하강 상류의 미세한 흙가루와 모래를 싣고 우리나라로 날아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비사막도 그렇지만 고비 알타이 역시 엄청나게 넓은 사막과 초원 지대가 펼쳐집니다. 알타이 산맥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고비 알타이. 이곳에는 몽골에서 가장 긴 모래 언덕 몽골 엘스(els)가 있습니다.

저녁이 되자 이곳 몽골 엘스는 바람이 거세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져 7월인데도 한겨울 날씨를 방불케 합니다.

그동안 몽골을 다니면서, 또 알타이 산맥 종주를 통해 게르(Ger)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 일행 중 일부는 춥고 잠자리가 불편했다고 투덜거립니다. 오지를 여행할 때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하는데 마치 유럽 어느 도시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어 앞으로 일정에 큰 불편이 예상됩니다. 여행(특히 오지여행)은 동행자와 호흡이 그 성패를 좌우하는데 첫날부터 걱정입니다.

새벽 일찍 모래 능선 위에 올라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몽골인 운전기사는 늑장을 부리고 일행 중 한 명은 무슨 새벽부터 출발하느냐며 잔소리를 합니다. 혼자 갈 수도 없어 한숨만 나옵니다.

밥을 먹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사이 해는 중천에 떠올라 모래 색깔이 그냥 누렇습니다. ‘여행은 뜻이 같은 사람끼리 다녀야 한다는 말이 참말이구나 싶습니다.

길을 나서고 얼마 후 강을 넘어서자 모래 언덕이 계속 이어집니다. 본격적으로 몽골 엘스에 들어섰나 봅니다.

2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차 1대가 멈춰섭니다. 고장이 난 것인지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꼼짝 못하고 있어 답답합니다. 두 운전사가 한참 동안 차를 점검하더니 도저히 여기서는 고칠 수가 없어 다시 고비 알타이 아이막까지 다녀와야 한답니다. 어쩐지 출발이 순조롭다 했더니 결국.

에렝 노루로 가는 도중 바라본 한 모래 언덕 위에 저어새 무리가 앉아 있다.
에렝 노루로 가는 도중 바라본 한 모래 언덕 위에 저어새 무리가 앉아 있다.

운전사는 차를 고치고 오려면 오늘 이 부근에서 하루 묶어야 할지도 모를 것 같다고 합니다. 순간 이게 웬일, 사막에 올라 저녁 해가 지는 풍경까지 찍을 수 있겠구나하고 기뻤습니다. 운전사가 떠나자 우리 일행은 마침 근처에 게르가 있어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쉬면서 이곳 지형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조금 떨어진 사막 가운데 있는 에렝 노루(nuur·호수)까지랍니다. 그 이후부터는 걸어 다녀야 한답니다.

차를 고치고 올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해서 먼저 호수를 다녀오자고 결심했습니다. 호수까지는 차들이 다녀 걷기에 불편은 없지만, 카메라를 잔뜩 지고 있어 헉헉거립니다.

호수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주변 모래 언덕에 하얀 새들이 앉아 있습니다.

망원렌즈를 끼고 자세히 보니 저어새 무리입니다. 어림잡아 40~50마리는 될 듯합니다.

너무 흥분해 달려갔더니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내가 너무 급했구나하고 저어새가 날아간 하늘만 바라보는데 잠시 하늘을 맴돌던 새들이 다시 호수 주변에 내려앉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사막에서 저어새 무리를 촬영하는 행운을 만난 것입니다.

모래 언덕은 바삐 걷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에 올라서면 연이어 이어지는 모래 언덕, 꽤 많이 걸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돌아봤더니 정작 얼마 오지도 못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를 생각에 욕심을 내보지만, 오르다 지쳐 잠시 쉬면 흐르는 모래 탓에 다시 아래로 내려가게 됩니다.

오르고 내리고를 몇 차례, 멀리 낙타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어 그곳을 향했습니다. 어디서 온 낙타인지 야생은 아닌 듯한데 혼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몽골 엘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에렝 노루(호수).
몽골 엘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에렝 노루(호수).

그 인근에 자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해가 나오길 기다려 사진을 찍으려는데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일행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2대가 보이는 것을 보니 수리를 마치고 돌아온 모양입니다.

얼른 돌아왔더니 알타이 아이막으로 돌아가야 한답니다. 차 수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다음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번 여행 목적이 고비 알타이인데 지금 돌아가면 어쩌란 말이냐고 따졌지만, 운전사는 알타이 산맥을 가는 또 다른 일행이 있어서 그러니 양보해 달라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가는 길에 사막 가운데 지점에서 촬영할 시간을 갖는 것으로 합의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