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안에서 나를 찾기
그들 안에서 나를 찾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3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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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제주지방법원 가사상담 위원·백록통합상담센터 공동소장

법원에서 촉탁으로 내려진 상담을 한 지 올해 12년 차가 된다.

법원에서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는 크게 다음과 같다. 당사자들이 협의해 재판으로 이혼하러 왔는데 부모의 자녀 양육에 대한 협의 혹은 의견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때 부모의 이혼 후 자녀 양육비 지급과 면접 교섭 이행에 관한 사안 중 자녀 복리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때 부모의 이혼 후 자녀의 친권·성본 변경, 친양자 입양 등의 절차를 밟을 때 그 중심에 있는 자녀 복리를 위한 점검이 필요할 때 가족 내 폭력이 발생해 가족 간 의사소통을 점검할 필요가 있을 때 청소년 자녀의 비행으로 인해 소년의 발달 점검과 가족 내 자원 점검 및 발견, 연결이 필요할 때 양쪽 부모 사망으로 인해 자녀 후견인 지정 신청이 있어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자녀의 심리상태를 파악해 건강한 성장을 하도록 돕고, 후견 부모의 양육 코치를 도울 때 등이다.

이 사안들을 당사자 입장에서 본다면 부부 갈등으로 인한 이혼, 이혼 후 자녀 양육에 대한 어려움, 가족 간 물리적·정서적 폭력, 청소년 자녀 비행, 가족 구성원 사망 등 가족 내 위기가 발생했을 때다.

이러한 일이 가족 내 일어난 것만으로도 큰 고통을 느끼는데 이 일을 처리 혹은 감당하기 위해 법원에 가야 한다면 그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절차도 복잡하다고 여기고 법원이란 기관이 주는 딱히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어려움 등의 감정이 섞여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든다.

피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법원에서 안내하는 절차를 밟다보면 문득 이거 법원이라는 기관이 가족 사생활에 너무 개입하는 거 아니야?’, ‘법원이 끝까지 가족 문제들을 책임져 줄거야? 그 과정에서 혹시 더 큰 어려움이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거야?’라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한다.

다시 마음을 고쳐 잡고 일단 얼른 처리해버리자 하는 마음이 들 즈음 법원에서 촉탁으로 상담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게 되면 다시 화가 들끓게 된다.

마지못해 상담실 문을 연 당사자들을 처음 대면한 그 때 흐르는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다.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이혼재판을 하는 부부가 풀어내는 기억의 온도 차는 또 얼마나 다른지 도무지 이 어려움 앞에서 어떤 대화가, 협의가, 해결이라는 게 가능할지? 만약 해결 국면을 맞는다면 그것은 기적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부모의 이혼, 부모의 이혼 후 재혼가정의 적응 혹은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아이들이 가슴에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을 쏟아내는 장면. 그 장면을 마주하며 마음 선생님으로 앉아 있을 때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 순간이 참 많다.

폭력이 발생한 부부, 부자, 모자, 형제 등이 함께 와서 재판을 거치면서 되레 사이가 더 벌어졌다고 그 탓을 경찰, 검찰, 법원에 돌리며 원망을 뿜어낼 때면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져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일어난다.

그렇게 아파하고 억울해하며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그 모습 안에 나와 내 가족, 친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음을 느낀다. ‘그들이 겪는 일은 바로 나와 내 가족, 친구가 겪을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온 마음을 기울여 당신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마음을 전할 때 참만남의 문이 열리게 된다. 이 문은 바로 열렸다가 닫히기도 하고 문이 열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너무 닮은 구석이 많아 계속 만나고 싶고,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냐며 반갑게 결혼한 부부. 혹은 서로 너무 달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한세상 외롭지 않게 살겠다며 만나 결혼한 부부.

이러한 부부들이 세월이 흘러 서로의 마음과 행동에 온통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때 그럴 수밖에 없는 그 마음에 공감해 주고 또 함께 버텨주며 그 모습이 바로 부부다. 여느 부부들도 이처럼 사랑하고 미워하다 다시 애틋해져 산다며 그들의 갈등을 인정하는 시간을 상담을 통해 갖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법원에서 마련했다는 것도 알린다.

법원은 이처럼 처벌의 장소가 아니라 가족 간 연결을 도모하는 긍정의 장소, 즉 후견적인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린다. 그럴 때 문득 ! 우리는 모두 함께 연결돼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이웃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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