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이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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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4월의 막바지다. 봄은 내달리기만 하는 말 잔등이에 얹어 있는지, 오는가 하면 저만치 가버린다. 그래도 매암 돌리는 아지랑이가 잽싼 봄을 주춤거리게 한다.

쏜살같은 게 계절만은 아닌 성 싶다. 시대의 흐름도 유유한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광풍이 휩쓸고 간 듯 어느 사이에 시대가 돌변해 있다.

43을 겪은 이들에게 영원한 사슬이었던 연좌제, 죽음으로도 씻지 못할 죄인이란 멍에였다. 그에 묶이면 공무원직은 물론 일반 기업체에도 취업이 제한돼 있었으며, 각종 불이익이 따랐다. 가족에게 대물림으로 제재가 유지되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 쉬쉬하며 얼마나 마음 졸였나. 제주의 어르신들은 이젠 너나없이 시시비비 할 수 있어서 좋단다.

중산간이 시가인 나는 결혼하고 몇 년 간은 고향 내려가는 길에 서면 마음이 무거웠다. 타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 년에 몇 번 나들이지만, 축축한 적막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식구들은 얼마나 과묵했는지, 오죽했으면 남편에게 시집 식구들은 말 안 하기 대회라도 하는 것 같다고 투덜거렸을까. 고향에 내려와서 명절음식을 차리다가 20대에 돌아가신 아버님과 숙부님에 관한 집안 내력을 여쭤 보는 중에 시어머니의 벼락같은 되받음에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속솜 허라.'

싸늘한 한마디는 서릿발이었다. 이후로는 아버님과 숙부님의 생사는 불문율이라 여기며 지냈다. 돌아가신 두 분이 큰 잘못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숨겨놓은 사연이 있어서 알려지면 감쪽같이 잡혀가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두 분만 사시는 집은 늘 침울했다. 십여 년이 흘러 고향에 정착한 후, 남편이 조심스럽게 전후사를 말해 준 후에야 말없는 할머님과 무뚝뚝한 시어머니를 이해했다.

우리 집에도 43은 풍비박산을 몰고 왔다.

스무 살 숙모님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뱃속에 유복자를 품은 채 홀로 됐고 스물네 살 시어머니와 네 살과 한 살인 두 아들, 그리고 조모님만 남겨놓았다. 깊은 산간 마을일수록 무법천지로 휘두르며 쑥대밭을 만들었던 암울한 시절, 생과부니 청상과부니 하며 설움을 호소하는 것조차도 죄스러운 시절이었으리.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도 변해야 한다. ‘황무지작가 T S 엘리엣이 읊은 잔인한 4월에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어바로 세워야 한다.

제주4·3은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잘못은 인정하고 받아들여 올바로 다듬어 세워야 할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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