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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간을 위하여
깨어있는 시간을 위하여
  • 제주일보
  • 승인 2019.04.21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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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깨어있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밤새 영화를 보거나 시간에 쫓겨 일하거나 몸이 아파 잠을 못 자고 끙끙대며 밤새는 경우는 있어도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하며,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혹은 사회가 가야 하는 올바른 방향을 생각하며 깨어있다는 것은 무모하면서도 쉽지 않다.

육체적으로 깨어있는 것 말고 정신적으로 깨어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진정 자신이 요구하는 바대로 몸과 정신이 움직이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는데 무척이나 어렵기 짝이 없다.

몇몇 스님들이 일상에, 자기 자신에게 깨어있으라는 말을 하지만 자신에게 화살을 들이대면 더럽게 어려운 일이다.

문뜩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모습과 직장에서 행동하는 패턴, 직원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되새겨 본다. 꼰대 짓을 하고 있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느새 행동은 청춘과는 저 멀리 빛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청춘이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 하는 행동도 청춘인 듯 착각한다. 그리고는 지식인이랍시고 혹은 나이 좀 들었다고 시도 때도 없이 잘난 체하고 화를 낸다.

다른 이들의 눈에 얼마나 어이없는 늙다리로 비칠 것인가. 그것을 알지도 못하는 부류 속으로 계속 귀향한다. 수구초심도 아니고.

직장에 처음 출근하게 된 시절. 소위 언론사 편집국의 가장 뒤편에 서서 마감 시간을 독려하고 신문의 틀을 잡아가던 편집국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편집국장은 물론 바로 앞의 부장은 내가 언젠가 넘을 수 있을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산과 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힘과 획을 지니고 있었다.

정치는 물론 사회의 온갖 현상에 대해 맹렬하고 날카로운 독설과 그에 맞는 제목을 달아가며 우리 사회와 정치에 대해 일갈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산같이 높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어느덧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였다. 나보다 서너 살 어린 나이에 그들은 그렇게 사회에 대해 치열한 고민과 판단을 했다. 그들을 보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미몽의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현실을 자주 잊는다.

선한 의지를 믿는 건 좋은데 치열함의 시간이 나중에 따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무시한다.

국토를 삼키고 이재민을 양산하는 산불에도 국가안보실장을 밤늦게까지 붙잡아두고 뭐가 잘못이냐는 정치인도 당당한 세상이다.

어디 정치뿐이랴. 직함 하나 받으면 권력이 저절로 생기는 줄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즐비하다. 여전히 완장이 권력인 줄 아는 사람들로 넘친다.

갑질과 꼰대와 꼴통이라는 말이 도대체 구분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 의미가 없어진 느낌이다. 다 뒤섞여있어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 게다.

얼마 전 실제 사진을 찍은 블랙홀 때문에 모든 물리법칙이 소용없어지는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개념이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빛조차 다 흡수돼 모든 것이 사라지는 지점에 관한 이야기다.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인생의 모든 경험과 지혜나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나이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사건의 지평선처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커진다.

깨어있는 자신을 가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이유다.

깨어있지 않으면서 서서히 곰팡이에 잠식돼가는 시간들. 정치뿐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관계에서 꼰대나 꼴통이 되지 않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 깨어있으려면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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