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교역 활성화 이후 거상 김만덕 등장”
“민간 교역 활성화 이후 거상 김만덕 등장”
  • 김나영 기자
  • 승인 2019.04.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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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기념관 학술세미나 ‘18세기 조선사회와 김만덕’ 주제로 열려
말·감귤 등 진상 부담에 대기근도 심각…역사적 연구기반 확보 눈길
19일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린 2019년 김만덕기념관 학술세미나
김만덕기념관 학술세미나가 ‘18세기 조선사회와 김만덕’을 주제로 지난 19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조선시대 후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제주의 거상 김만덕(1739~1812)이 출현할 수 있었던 당대 사회‧경제적 상황을 살펴보는 학술 세미나가 마련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사)김만덕기념사업회(상임대표 고두심)는 지난 19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18세기 조선사회와 김만덕’을 주제로 2019년 김만덕기념관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정조 후반기 4년간 집중적 흉년으로 제주지역 아사자가 속출하자 전 재산을 풀어 진휼미를 내놓은 여성 상인 김만덕에 대한 역사적 연구 기반 확보를 위해 마련됐다.

이날 이욱 순천대 사학과 교수는 ‘18세기 제주의 진상제와 상품유통’에서 “조선시대 후기 제주지역 기근대책으로 관이 주도했던 제주‧육지 간 물자유통이 토호 관속의 이익독점 및 폐단 등의 한계로 관영상업에서 민간상업으로 교역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이에 민간차원 교역 활성화와 함께 김만덕과 같은 거상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양진석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는 ‘18‧19세기 제주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조세 수취’에서 “당시 제주인들은 대규모 기근과 전염병, 중앙상납물품에 대한 부담을 견뎌야 했다”며 “특히 특산물인 경우 말 개체수가 줄면 관리자인 목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변상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기도 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귤의 경우 나무 주인이 진상 부담으로 인해 더운물을 끼얹어 귤나무를 죽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문용식 전주대 교수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진휼정책과 제주 지역의 진휼 실태’를 통해 “정조 후반기 제주의 대기근은 막대한 인구손실을 초래했고 점차 민간 물자교역을 활용해 제주의 흉년에 대처하려 했다”며 “한때 관영상업을 부활하는 문제도 논의됐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대신 제주에 1만석의 곡식을 비축하자는 방안이 추진돼 추후 전국적 대기근 발생시 전라도의 진휼재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제주도와 김만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김만덕기념관과 한국사연구회, 제주연구원이 주관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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