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虍) vs. 돼지(豕)
호랑이(虍) vs. 돼지(豕)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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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전 중등교장·칼럼니스트

호랑이와 돼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술자리에서 벗들에게 안주 삼아 던져봤다. 어린아이 질문처럼, 갑자기 생뚱스럽다며, 모두들 의아해했다. ‘호랑이가 이긴다는 게 당연하다는 어투이다.

 

호랑이의 낮은 숨소리에도 동네 개들이 땅속 쥐처럼 죽은 체 한다. 살아 움직이는 호랑이가 아닌, 그 무늬()만 걸려 있어도 문 안으로 들어서려던 도깨비마저 줄행랑 도망친다 한다. 혹시 부적(符籍)으로 지금 호랑이 무늬를 집 현관에서 보이게 붙여 놓아 있지는 않은지. 그런 게 호랑이 아닌가요? 어떻든, 그런 호랑이와 돼지가 싸움 붙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이긴다.’가 어찌 당연한가?

 

셰익스피어의 말. ‘인생은 한갓 연극(Drama).’ 연극이란 무엇인가?

한자(漢字) 구성으로 접근해 보자. ()은 호랑이()와 돼지()의 싸움(+), 그 정글싸움 속으로 칼()이 들어선다. 호랑이()와 돼지()의 싸움(+)에 어찌하여 칼()이 등장하는가? 그것이 극(++)이다. ()이란 호랑이()와 돼지()의 싸움(+) 속으로 칼()자루 쥔 극작가·연출가의 의도가 들어가는 것이다. 칼이 호랑이를 쳐 죽여, 돼지 사료로 쓰이게 될 수도 있다.

 

드라마처럼 생명을 빼앗지 않는 싸움이 스포츠이다. 하여,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 그런데, 각종 스포츠의 경기력 등위에 맞추어 승부가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인 즉, 2018 러시아 월드컵축구에서는 랭크 1(FIFA)인 독일팀이 한국팀에게 꼼짝 못 하고 패퇴 되었다. 세계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아닌가. ‘한국vs.독일의 축구, 그 드라마의 연출자는 누구일까? 누구의 칼() 휘두름에 그 결과가 빚어진 것일까?

 

북미 하노이 회담.’ 왜 그렇게 맥없이 풀어졌을까? 그 만남에서 호랑이는 어느 쪽이며, 어느 쪽이 돼지였나? 둘 다 인간인데. 인간 세상은 정글 속과 다르다. 셰익스피어의 인생은 한갓 연극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의 스토리 전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없는 연극은 연극이 아니다. 무대 앞 관객의 눈빛들처럼 지구촌 전체가 지켜보고 있다. 극작가의 칼()은 무엇인가? 지구촌 전체의 시선이다.

 

훈련소에 입대하면 제식훈련과 개인화기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는다. 매우 신속하게 개인 소총을 분해·조립할 수 있어야 한다. ‘격발로써 제대로 잘 조립되었는지를 확인한다. 그 소총의 모든 부속품들을 내던져 버려라(dismantlement). 지구촌 모두가 보는 앞에서(verifiable). 다시는 재조립할 수 없도록(irreversible). 그 반대급부(反對給付)는 무엇인가. ‘추가적 제재 철회(withdrawal of the additional Sanctions)’를 지시했다 한다. ‘추가적은 립서비스(Lip Service)로 아니 들릴 텐가. 현재 상황만으로도 상당한 혜택을 주고 있다는 암시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쇠로서의 역할을 누가 할까? 어느 쪽이 호랑이이고 돼지인가를 누가 연출할까.

 

무기들을 뒷짐에 쥐고 있다. () 무기는 내뱉고, () 무기는 숨기려 든다. ‘제재 추가철회조립 가능의 저울질에서, 거래(Deal)의 꼴들이 우습다. 이곳 제주 4·3 학살(Massacre)’도 혀()와 쇠()의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을 관객 기대 밖으로 쓰면,

결코 그 것은 극()이 아니다.

호랑이(), 돼지()도 못 되는

다만 칼()을 마구 휘두르려는

두 마리의 원숭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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