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최초 온주밀감 결국 고사 '역사 뒤로'
제주 최초 온주밀감 결국 고사 '역사 뒤로'
  • 고권봉 기자
  • 승인 2019.04.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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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일본서 온 14그루 중 마지막 남은 한 그루
서홍동단체장협 등 고사 판단…추후 대책 논의키로

1911년 제주도에 최초로 들어온 감귤나무의 효시인 온주밀감(미장온주)이 결국 고사해 역사의 뒤로 사라지게 됐다.

14일 서귀포시 서홍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 집(면형의 집)’에 있는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인 미장온주 1그루.

검은색 차광막이 둘러 처진 밑으로 푸른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만 드러냈다.

해당 미장온주는 1911년 당시 서홍성당 주임신부였던 프랑스 출신 에밀 조셉 타케 신부(1873~1952, 한국명 엄택기)가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제주산 왕벚나무 몇 그루를 보내준 답례로 받은 14그루 중 마지막 남은 한 그루다.

수년 전부터 수세가 조금씩 약해지다가 지난해 여름, 잎이 마르는 등 고사 위험에 닥쳐 서홍동 주민들이 차광막을 설치하고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녹화 마대로 나무를 감쌌지만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지 않았다.

주민들이 탱자나무 묘목 2그루를 뿌리접(건강한 나무뿌리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영농기법)을 하고 나무 표피에 피부 보호제를 도포했지만 이렇다 할 감귤목의 정상적인 생육활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홍동 주민들은 이곳을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 시원지로 정하고 이 감귤나무를 근거로 마을입구에 감귤의 본향 서홍동이라고 적힌 비석을 세우는 등 역사적 사실에 의미를 두고 관리를 해온바 있다.

이와 관련 서홍동단체장협의회는 지난 12일 회의를 열고 그동안 전문가 지도를 받으며 주기적 나무상태를 확인했지만 제주 최초 도입 온주밀감 나무가 고사한 서으로 판단하고 추후 고사목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고권봉 기자  kkb@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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