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을 다시 보는 이유
송악산을 다시 보는 이유
  • 정흥남 편집인
  • 승인 2019.04.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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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최남단에 위치한 오름. 표고 104m, 둘레 3115m로 대정읍에서 두 번째 큰 오름이다. 제주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화산 중 하나로 약 5000~7000년 사이에 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악산이다. 

예로부터 이 땅을 영주라고 하였는데/ 바다 돌며 모두가 놀만한 명산일세./ 하늘까지 솟은 노대(露臺·지붕없는 무대) 만길 위에 임하니/ 석반과 운골은 천추에 늙었구나./ 피리 부는 밤달은 선려(仙侶·뜻이 맞는 좋은 사람)를 만나보고/ 염막(簾幕·소금굽는 시설을 갖춘 집)의 봄바람에 신기루를 보겠구나./ 가벼이 둥둥 떠서 신선이 된 듯 느껴지니/ 곧바로 하늘을 날아 봉래산에 가리로다/. 청음 김상헌(1570~1652)이 한시 ‘송악산’을 의역했다.

송악산이 다시 나왔다.

1990년 말~20004년 제주사회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 ‘사건’이 다름 아닌 송악산 관광지구 개발 사업이다. 당시 개발사업자는 대대적인 기공식까지 개최했다. 사업에 반대하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등이 잇따랐다. 우여곡절이 이어졌고 2003년 6월 제주도는 송악산관광지구 지정을 해제했다.

#도의회 동의 앞둬 논란 가열

10개월 전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한민국 최고 관심선거지역 한곳이 바로 제주도지사 선거전이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집권여당의 고공지지를 등에 업은 여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격돌했다.

선거판에서 원희룡 무소속 후보가 이겼다. 선거가 끝난 뒤 많은 승패분석이 따랐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원 후보 공약의 우월성이다.

일부 공약의 경우 경쟁후보를 훨씬 앞섰다는 평가가 따른다. 실현 가능한 제주의 미래비전을 담았다. 당시 원 후보가 내놓았던 공약 가운데 하나가 ‘송악산 개발반대’다. 원 후보는 “송악산은 생태적·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만큼 허가를 내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송악산 개발의 물꼬가 터졌다. 제주도환경영향평가위원회가 2차례 재심의 끝에 호텔 층수를 8층에서 6층으로 낮추는 조건으로 심의를 통과시켰다. 공식 사업명은 ‘뉴오션타운 조성사업’. 사업시행자는 중국 칭타오에 본사를 둔 ‘신해원 유한회사’다.

사업비 3219억원을 투자해 500동이 넘는 숙박시설(호텔)과 휴양특수시설, 편익시설을 조성하는 것이다. 제주칼호텔 객실(282실)의 갑절 규모다. 이 사업은 이제 도의회의 동의절차와 원 지사의 최종 결정만이 남았다.

도의회 동의절차가 다가오면서 논란이 뜨거워진다.

#‘제주올레’ 주민 등 반발 이어져

“지난 12년 동안 제주올레길을 내고 관리하면서 제주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아니라 원형 그대로의 자연과 자연자원만 잘 활용하고 보존해도 지역경제가 활성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주 자연환경과 올레길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대규모 개발은 제주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추진해선 안 된다.” 이달 초 사단법인 제주올래(이사장 서명숙)가 송악산 개발사업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다.

이에 앞서 지난달 말 송악산 개발에 반대하는 대정지역 1096명 주민의 서명이 제주도의회 에 전달됐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도 가세한다.

내부 자본이 빈약한 제주의 입장에서 외부자본을 통한 개발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또 그렇더라도... 1000명이 넘는 지역주민까지 나서 반대하고, 심지어 제주 생태관광의 새 지평을 튼 ‘제주올레’까지 나서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 게 정당하고 합리적이다.

송악산은 제주의 마지막 해안 스카이라인을 간직한 곳이다. 인근 섯알오름, 일오동굴과 함께 제주 근현대사 비극의 현장이다. 원형 보전의 당위성이 차고 넘치는 제주가 가슴으로 품어야 할 귀중한 역사유적이다.

지금 제주에 시작은 했지만 중단된 대규모 관광개발사장만 해도 20곳이 넘어선다. 이 조차 못하면서 또 다른 곳에 삽질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나온다. 20년전 송악산을 다시 보는 이유다.

정흥남 편집인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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