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몽하는 ‘나’로 사는 사회
오몽하는 ‘나’로 사는 사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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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제주한라대 간호학과 교수·논설위원

오몽하다움직이다의 제주 방언이다. ‘오몽하기 싫다는 표현은 모든 게 귀찮고 의욕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주 재보궐선거의 역대 평균치를 넘어서는 뜨거운 투표율은 이 오몽하는 민심을 잘 보여줬다. 현 정부에 대한 격려와 지지, 그리고 실망과 견제가 맞부딪쳐 투표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을 오몽하게 만든 결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한다는 것은 좀 더 나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욕이 큼을 의미한다. 사회의 발전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이를 완화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견제와 갈등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나의 의견만이 존재하고 일사불란하게 관철된다는 것은 주도적 의견이 지닌 힘에 눌려 다른 의견 표출을 쉽게 포기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의 독주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야당의 견제 목소리는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견제할 사항을 견제하기보다 상대방을 중상에 가까운 비판으로 깎아내림으로써 진흙탕 싸움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정치인의 표현들을 보면 깜짝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현란한 언어의 마술사들 같다. 그럴 때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오몽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오몽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것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함정이다.

살아가면서 이 함정에 빠지면 결국 문제 의식을 포기하고 무관심과 현실 안주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몽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은 주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가 해야 할 도리를 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이 바른 정치를 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반드시 오몽해 문제 제기와 함께 투표 참여를 통해 그들이 국민들의 심판을 두려워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집단이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제주의 한 사립대학에서 치러진 대학 최고심의기관인 평의원회 평의원 선거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심의를 받아야 할 대상이 심의 주체인 평의원을 선택하는 권한을 행사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 황당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끊임없는 문제를 제기하는 오몽이 모여 결국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도록 대학 조례가 개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투표율은 무려 95%를 기록했다. 이러한 놀라운 오몽이 이뤄진 배경엔 이처럼 명색이 최고 교육기관이라는 곳에서 어쩔 수 없이 최초의 비밀투표를 한 웃고픈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여하튼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없이 대학본부가 선거 전반을 관장하면서 선거권자의 알 권리와 투표 참여 여부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점 등 시정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처음으로 비밀투표가 시행된 점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임이 분명하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몽하기 싫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 이들은 늘 존재한다. 우리 조상들의 오몽은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생존만을 위한 부지런함이 아닌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오몽은 방관과 침묵, 그리고 잘못된 권력에 편승코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저항을 통해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건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4·3의 아픔이 꽃으로 피어난 4월에 나가 살앙 오몽하여질 때까장사 밧디 가사주(내가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밭에 가야지)’라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철학, 이름하여 오몽정신을 깊이 새겨본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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