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신념 사이
사실과 신념 사이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9.04.10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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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는 필수가 됐다. 손석희 JTBC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에서 지난 2014년 시작한 이 코너에, 이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언론매체 대다수가 비슷한 형식으로 합류했다. ‘가짜’가 ‘뉴스’처럼 행세하는 시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9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세미나’도 제목만 보면 70여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잔혹한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국가폭력인 만큼 4·3특별법을 개정해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에게 국가가 정당하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한애국당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선 ‘4·3은 폭동’ ‘4·3진상보고서는 엉터리’ ‘4·3평화공원의 희생자 위패, 사료관 전시물도 가짜’라는 식의 왜곡된 주장이 이어졌다. 심지어 제주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서북청년단의 폭력을, 공산주의에 맞서 ‘정당한’ 혹은 ‘불가피한’ 행위였다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서청에 의해 희생당한 유족들이 들으면 통곡할 노릇이다.
또 ‘4·3특별법 개정은 (유족에게) 2억원씩 주자는 것’이라며 절대 이뤄져선 안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런 황당한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돼온 것이라 특별히 새롭지도 않았지만 전혀 연관도 없는 드루킹 댓글조작과 연계하는 걸 보고 논리와 합리적 근거를 묻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닫게 한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이날 세미나 발표자 4명 모두 제주출신이었다는 점이다. 퇴직 교사, 사관학교 출신, 이름난 소설가, 제주대를 졸업해 현재 연세대에서 석사과정의 대학원생.

이들 역시 제주 애월읍 하귀리의 영모원(英慕園)을 알 터. 그 난리통을 겪고 이 마을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 갈등대신 화해와 상생이란 것을 그들 또한 모를 리 없을 법한데도 말이다.

신념처럼 굳어버린 그들에게 ‘4·3의 진실’에 대한 팩트체크, 제주언론의 숙제가 너무 무겁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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