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나의 지병
게으름, 나의 지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09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가영 수필가

'목숨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해서 웃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세다. 모이면 온통 건강 얘기다.

나에게 건강해 보인다고 한다. 건강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걸음이 빨라서 그런 느낌을 갖는 모양이다.

그러나 쉽게 피로를 느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가면 더욱 그렇다.

잘 먹기만 하고 운동부족이라고 주위에서 걱정스런 말을 한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주 골 깊은 게으름 병이 내게 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무관심이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왜 당신은 그렇게 신경을 쓰십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 머리 속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실제로 병에 걸렸다면 모르지만. 온통 다이어트 식품에 천연 유기농 식품, 건강식품, 미용과 건강을 위한 그 무엇으로 난리다.

평생 지병으로 갖고 있는 게으름 때문에 나는 이 나이가 되도 못한 게 너무 많다. 노후 대책이 그렇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하염없이 많다. 못다 쓴 글도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런 판에 건강을 위해 신경을 소모할 여력이 없다.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

큰 병이 오기 전에 미리 예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점점 늙어 가면서 기력이 없어진다. 참고 견디는 것도 힘이 든다. 피곤하고 아픈 것에 인내력도 없다.

큰 병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우주의 질서이며 현상이다. 도망칠 수 없다.

그 때는 백기를 들고 항복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급사라도 하지 않는 한 죽기 위한 고통이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의약의 힘으로는 어째볼 수 없는 괴로움이다.

아무리 애써 미용과 건강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해도 어떤 형태로든 오고야 마는 그 시간.

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나의 지병, 게으름만큼은 좀 고쳐 주셨으면 하고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다. 건강을 위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 하나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러나 더 큰 잘못이 있다.

게으름이라는 지병, 그것은 작가인 내게 직무유기라는 죄를 짓게 했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진실을 피력하는 게 아닐까? 여태껏 써온 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 때에 따라서는 부조리에 대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질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 게으름 고치는 알약이 있다면 그건 우선 챙겨 먹고 싶다. 그 병은 정말 고치고 싶으니까.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