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주년 4·3을 보내며
71주년 4·3을 보내며
  • 김현종 기자
  • 승인 2019.04.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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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71주년 4·3 기록의 첫 장은 군‧경의 몫이지 않을까 싶다. 4·3 당시 부당한 공권력을 휘둘렀던 기관 수장들이 사상 처음으로 사과 입장을 밝힌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했던 ‘제주의 봄’이 성큼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군‧경의 결단은 4·3을 향한 국민적 인식 변화와도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레드 콤플렉스로 대변되는 낡은 이념‧적대‧증오의 언어는 더는 통하지 않을 만큼 한국사회가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4·3은 대한민국 역사’가 현실화한 것으로 4·3 전국화의 결실이기도 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4·3의 발생 배경을 한국 현대사와 직결시킨 역사적 재정립이다.

한신대 석좌교수인 도올 김용옥 선생은 4·3희생자추념식에서 “4·3은 1948년 4월 3일 일어난 특정 사태가 아니라 1947년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북국민학교에 운집한 제주도민 3만명의 열망에서 점화돼 7년 7개월간 타올랐던 비극의 횃불, 그 횃불을 물들인 모든 상징적 의미체계를 총괄한다”고 규정했다. 도올 선생은 “4·3 정신은 바로 자주와 독립”이라고도 했다.

당대 석학의 이 같은 갈파는 한국 현대사에서 4·3의 의미를 정면으로 응시한 것이다. 해방정국 당시 4·3의 발발 원인을 터부시하던 장벽을 허물고, 4·3을 넘어 과거사의 본질을 짚고 올곧게 청산하기 위한 국민적 시야를 넓혔다는 점에서 일대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4·3의 당면과제인 4·3특별법 개정은 오리무중이다. 국가 책임에 따른 희생자 배‧보상과 군사재판 무효화 등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은 4·3의 남은 과제 해결을 위한 첫발임에도 국회 문턱에 묶여있다. 71주년을 맞아 4·3 완전 해결을 향해 도도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국회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희생자와 유족, 도민이 4·3으로 또 한 번 울부짖고 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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