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역사 쓰기
‘기억과 망각’의 역사 쓰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0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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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 북서쪽 소도시 리바디아(Livadia)에 가면 샘이 두 개 있다.

신화에 따르면 오른 쪽은 므네모시네(Mnemosyne), 즉 기억의 샘물이고 왼쪽은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레테(Lethe), 즉 망각의 샘물이라고 한다. 두 샘이 하나로 모여 작은 강을 이루고 흐르는데 이 강의 이름이 라이프(Life), 인생이라는 뜻이다. 기억과 망각으로 흐르는 우리 인생을 의미한다.

다시 4월이다. 꽃비를 맞으며 4·3주간을 보냈다. 4·3은 늘 우리에게 기억과 망각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7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은 여전히 기억과 망각, 그리고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기억과 역사는 유사하지만, 그 개념과 성격부터 다르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미 내려진 평가로서 고정적인 것인 반면, 기억은 과거에 대한 현재 나의 기억행위로서 현재 진행형이고 가변적인 특징이 있다.

 

기억과 연관되는 말 중 하나가 기념이다. 기념이란, 과거의 사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기억하는 행위와 의식을 말한다. 기억과 동시에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기념의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4·3을 해마다 성대하게 기념하면서도 정명(正名)조차 못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 기억으로 남아있다.

프랑스 학술 저널리스트 피에르 노라도 바로 이런 점을 주목했다. 그는 1984년부터 8년 동안 프랑스의 역사학자 120명을 동원해 일곱 권 분량의 대저인 기억의 장()’을 완성한다.

그는 프랑스인의 집단 정체성 형성을 공동의 기억에서 찾았다. 즉 공동의 기억을 갖는 단위로써 집단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집단기억의 입체적 조명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새 프랑스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 기억과 망각의 역사 쓰기는 유행이 됐다.

우리의 경우도 남과 북이 전혀 다른 역사 쓰기를 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한국사 새로 쓰기 경쟁이 심화하는 요즈음, 해방 전후사의 집단 기억을 제대로 되살리는 일이 시급한 곳이 바로 제주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이슈 중 하나가 잊혀질 권리. 디지털 미디어 사회에서 망각은 인권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괴롭거나 슬플 때 떠올리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한다.

잊을 수 있기에 과거의 고통에 매이지 않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4·3과 같은 끔찍한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사람들을 과거에 매여 살아가게 한다. 이런 기억과 망각 사이에는 철학적·윤리적 난제가 존재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이자 미국의 저명한 작가이며 교수인 엘리 위젤(Ellie Wiesel)구원은 오직 기억 속에서만 발견된다고 기억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평생 홀로코스트를 세상에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 그에게 기억은 구원의 길이었고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기억은 선택된 트라우마이며 그것이 전부를 대표할 수는 없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 크로아티아 출신의 미국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망각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볼프는 위젤의 말을 역으로 적용해 구원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의 자유, 혹은 해방으로 이해하고 망각이야말로 온전한 기억의 완성이라고 봤다.

볼프의 주장은 위젤의 기억 강조를 피해자 중심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기억해야 하는 당위성보다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조건 기억하기보다는 바르게 기억’(remembering rightly)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 과제로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진실하고 정의로운 기억, 둘째 타자(他者)를 해치지 않으면서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한 기억, 그리고 셋째 화해를 추구하는 기억이다.

이 세 가지 제안은 우리 제주 사회가 품은 4·3의 고통과 기억과 망각의 역사를 풀어가는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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