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움트는 호수와 삭막한 대지…대초원의 두 얼굴
생명 움트는 호수와 삭막한 대지…대초원의 두 얼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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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우리말의 고향 알타이를 가다(9)
우레그 호수를 지나 한참 동안 넓은 초원을 차로 신나게 달려갔다.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크고 작은 소금호수를 만날 수 있었다.
우레그 호수를 지나 한참 동안 넓은 초원을 차로 신나게 달려갔다.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크고 작은 소금호수를 만날 수 있었다.

강을 지나기 전까지는 파란 초원길을 시원스럽게 달렸고, 풍광도 참 아름다웠답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 얼마 안 가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순식간에 순간 이동을 해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환경이 급변합니다. 차로 달려 1시간 정도인데 이 곳은 나무 한 그루, 파란 풀 한 포기 없는 그야말로 열대 사막에 들어온 것 같이 기온이 갑자기 올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몽골이 넓은 땅이라 하지만, 이렇게 급변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고 운전사 남스라이를 바라 보니 큰 덩치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런 길을 한참 달리더니 갑자기 차가 멈춰 섭니다. 기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남스라이는 차가 고장 났다며 여기저기를 살펴봅니다. 그러더니 뜨거운 차 아래로 들어가 수리를 시작합니다.

차를 타고 초원길을 신나게 달리다가 끝자락에 이르자 갑자기 주변 환경이 확 바뀌었다.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열대 사막과 같은 모습의 삭막한 지역이 이어지기도 했다.

차를 수리하는 동안 햇볕을 피할 곳은 차 그늘뿐이라 서로가 얼굴만 그늘로 피하고 수리가 끝나길 기다립니다. 남스라이는 땀으로 범벅이 됐는데도 미안하다는 표정입니다. 우리가 도와주지 못해 더 미안한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남스라이가 차를 수리하는 모습을 왜 카메라에 담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가 됩니다. 그의 고생 덕택에 우리 일행은 고난의 땅(?)을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차가 달리니 그래도 바람이 좀 불어와 한숨을 돌렸습니다. 황무지 같은 땅을 한동안 계속 가더니 멀리 호수가 보입니다.

남스라이는 이 곳에서 하루 머무를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한낮인데 벌써 여장을 푸느냐?”고 묻자 그는 이 곳을 벗어나면 잠을 잘만한 장소가 없다고 합니다. 호숫가에 게르(Ger) 몇 개가 있을 뿐, 다음 숙박지역까지 길이 너무 멀어 밤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1박을 할 수밖에 없답니다.

호수여서 그런지 모기가 엄청 많아 걱정입니다. 게르를 덮은 하얀 천 위에 모기가 시커멓게 앉아있어 보기에도 아찔한데 어떻게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지 걱정입니다.

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남스라이가 게르 안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게르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게 웬일 입니까? 밖에는 온통 모기 천지인데 게르 안은 모기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몽골족의 묘.
카자흐스탄 몽골족의 묘.

이러한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순간 문득 묵내뢰(默內雷)’란 글이 생각납습니다. ‘겉으론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으론 우레와 같다는 뜻을 지닌 서예가들이 많이 쓰는 글입니다.

밖에는 모기들이 호시탐탐 언제 달려들지 노리고 있는데 게르 안은 얼마나 평온한지.

놀란 제 표정을 본 울찌가 설명하는데 게르를 덮은 양털이 모기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충망 역할을 하는 것이랍니다.

잠시 쉬고 있으니 그런대로 지낼 만해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주변 호수에 나가 보니 물닭 한 마리가 갓 부화한 새끼들을 데리고 물가를 거닐고 있어 한참 동안 쫓아다니며 촬영했습니다. 몽골 초원 어디를 가나 각종 철새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와 오늘, 비록 찰나의 시간이지만 극과 극이 만나는 순간을 연이어 마주한 것 같습니다.

모기 걱정을 했으나 예상 외로 편안한 밤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간밤에 좀 피곤했던지 일행 모두 편히 쉬었다는 듯 표정이 무척 밝아 보입니다.

우리 일행은 오늘 몽골 알타이 산맥 끝 지점인 옵스노루까지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가는 도중 크고 작은 호수들을 볼 수 있었는데 곳곳에 소금을 긁어 쌓아놓은 하얀 소금더미가 널려있어 이 일대에 소금호수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초원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몽골족 여인.
초원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몽골족 여인.

언젠가 한 게르에 구멍이 숭숭 뚫린 울긋불굿 한 수정처럼 생긴 덩어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소금호수 주변에서 캐낸 암염(巖鹽)이었습니다.

양이나 야크, , 말들이 풀 뜯어 먹고 돌아오면 매일 이 암염을 핥아 먹었답니다. 가축은 물론, 야생동물도 소금을 꼭 섭취하기 때문에 대륙 곳곳에 있는 소금호수는 아주 중요한 곳이랍니다. 옵스노루는 몽골과 러시아 국경을 이루고 있는 몽골에선 가장 큰 소금호수랍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멀리 옵스노루가 있는 올란곰 아이막이 보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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