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주년 4·3희생자추념식 이모저모
제71주년 4·3희생자추념식 이모저모
  • 고경호·현대성·홍수영·김지우 기자
  • 승인 2019.04.03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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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그 날이 돌아왔다. 해마다 폈다 짐을 반복하는 봄꽃처럼 4·3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무려 71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유족들의 한은 그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조금도 덜어진 게 없다. 그래서 인지 4·3 영령들의 억울함과 유족들의 설움이 교차되는 4·3 추념식은 여전히 서글프다.

“어머니” 오열에 추념식 울음바다로

○…4·3 당시 부모형제를 모두 잃은 김연옥 할머니(77)와 손녀 정향신씨(22)의 이야기가 추념식을 울음바다로 적셨다.

추념식 무대에 선 정씨가 김 할머니의 사연을 담담히 전했다. 정씨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8살 당시 조부모, 부모, 동생까지 잃고 난 후 바다에 떠내려간 가족 생각 때문에 평생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 정씨가 “나는 지금도 바다에 파도가 치면 부모님이 ‘우리 연옥아’하고 두 팔 벌려 내게 오는 것 같아”라는 김 할머니의 말을 전하자 무대 안팎에서 울음이 터졌다.

김 할머니에게 눈을 떼지 못하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해 정치인들은 물론 4·3희생자와 유가족 등 참석자 모두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김 할머니는 손녀가 무대에서 내려오고도 한참을 “어머니, 아버지”라며 오열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울부짖은 “4·3특별법 조속히 개정해야”

○…“8만 유족 염원 담긴 특별법 조속히 개정하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간절한 외침이 제주4·3평화공원에 울려 퍼졌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추념식 행사장 입구에서 ‘8만 유족 염원 담긴 특별법 조속히 개정하라’가 새겨진 현수막을 펼치고 4·3특별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입장하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특별법 개정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

한 유족은 당 대표들을 향해 “억울해서 못 살겠다. 유족의 염원인 4·3특별법 개정을 빨리 처리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이날 송승문 유족회장도 추념사 끝에 “4·3특별법을 조속히 개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당 대표들이 앉은 자리로 향해 일일이 90도 인사를 하며 간절함을 전했다.

“다른 수형인 재심도 조속히 이뤄져야”

○…지난 1월 4·3 재심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받고 처음으로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한 생존 수형인들은 저마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생존수형인 오영종 할아버지(89)는 3일 추념식이 거행된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아 "70년 세월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기분"이라며 "다른 생존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도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조병태 할아버지(90)도 "(지난 공소기각 판결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라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무슨 말 부터 해야 할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부원휴 할아버지(90)도 "살암시난(살다 보니) 이런 감개무량한 일도 맞이하게 됐다"며 "90 평생에 이런 감격스런 순간이 없다"고 말했다.

부 할아버지는 이어 "아직 해결되지 못한 4·3 문제가 많다"며 "아직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한 분들이 빨리 (희생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추념식에서는 지난 1월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생존수형인 18명의 이름이 모두 호명됐으며, 이들의 공소 기각 판결을 형상화한 ‘벽을 넘어’ 퍼포먼스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여순사건 유족도 분향…같은 아픔 위로

○…여순사건 유족들이 제71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해 제주4·3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했다.

여순사건 유족들은 ‘4·3사건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3일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해 4·3 유족들과 함께 희생자들에게 헌화·분향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2000여명이 제주4·3에 대한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정부가 대규모 진압군을 투입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다.

여순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라는 똑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4·3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헌화와 분향을 통해 위로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앞서 2일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와 전남도의회 10·19사건특별위원회는 제주시청에서 열린 추념식 전야제에 참여해 4·3특별법 개정과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4·3 정신은 자주와 독립”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제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제주평화선언’을 통해 “4·3 정신은 자주와 독립 두 글자에 있다”며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기 위해 제주의 민중은 일어섰다. 홍익인간의 이상을 만방에 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4·3은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특정한 사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며 “1947년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북국민학교에 운집한 제주도민 3만명의 열망에서 점화돼 7년 7개월 동안 타올랐던 비극의 횃불, 그 횃불을 물들인 모든 상징적 의미체계를 총괄해 일컫는 말”이라며 4·3의 의미를 되새겼다.

배우 유아인은 전국 각지에서 온 대표 6명과 ‘71년의 다짐’을 발표하며 “4·3은 제주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라며 “젊은 세대가 4·3을 알아나가고 3세대 유족이 1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4·3의 정신을 기억하는 내일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곳곳에서 따뜻한 봉사 손길 이어져
 
○…제71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는 유족과 방문객들을 위한 따뜻한 봉사 손길이 이어졌다. 

이날 4·3희생자유족부녀회와 수운교청정봉사단, 봉개동 부녀회 등은 각각 봉사 부스를 운영했다.

유족과 방문객들은 부스에 마련된 따뜻한 커피와 차, 음료로 목을 축였다. 또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행사 시작을 기다렸다.

양춘자 4·3희생자유족부녀회 사무차장은 “추념식 때마다 4·3 영령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주먹밥을, 올해는 차를 준비했다”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뿌듯하다. 앞으로도 계속 봉사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유족과 방문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휠체어 대여 부스를 운영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휠체어 15대를 준비해 보행이 불편한 유족과 방문객의 추념식 참가를 도왔다. 휠체어는 유족과 방문객의 호응을 얻으며 추념식 시작 30분 전에 모두 대여됐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몸이 불편한 유족과 방문객을 돕기 위해 휠체어를 준비하게 됐다. 앞으로도 매년 추념식에서 휠체어 대여 부스를 운영해 편의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경찰 지휘부도 4·3 영령 위로

○…제주경찰이 제71주년 4·3희생자추념일을 맞아 4·3 당시 총살 위기에 처한 도민 수백명을 구해낸 고 문형순 경찰서장을 기렸다.

제주지방경찰청 이상철 청장과 고기철 차장 등 지휘부는 3일 오전 8시30분 지방청 중앙현관 앞에 세워진 고 문형순 서장의 추모흉상 앞에 도열해 헌화·분향하고 4·3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 청장은 “4·3 당시 도민들의 목숨을 지킨 고 문형순 서장의 의로움을 되새기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조촐하게나마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며 “특히 4·3희생자유족회와 경우회가 함께 걷고 있는 화해와 상생의 길에 후배 경찰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의미도 담았다”고 말했다.

한편 고 문형순 서장은 1949년 모슬포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좌익 혐의를 받던 도민 100여명을 자수시켜 훈방했다. 또 이듬해 성산포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예비검속자들을 총살하라는 군의 명령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 하겠다’며 거부해 200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고경호·현대성·홍수영·김지우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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