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9.04.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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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약왕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 이두삼은“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믄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고 역설한다. 일본인들을 마약에 빠지게 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면 애국아니냐는 궤변을 펼쳤다. 이 영화를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는데 최근‘버닝썬’이라는 클럽에서 시작된 사건이 재벌가의 마약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을 ‘마약청정국’이라고 여기고 있던 일반 국민들은 또 한 번 개탄을 하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최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손자 최모씨가 고농축 대마 액상을 사고 투약한 혐의를 확인,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정모씨도 동종 대마 액상을 사들인 혐의로 입건됐지만, 현재 해외 체류 중이다.

재벌가의 마약 관련 추문은 더 있다.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모씨가 지인과 필로폰을 수차례 투약했다는 내용이 담긴 3년 전 판결문이 공개됐다. 2015년 경찰은 황 씨를 이 지인과 함께 입건했지만, 황 씨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돼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경찰의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까지 커지자 서울경찰청이 황 씨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사에 착수했다.

버닝썬 파문이 증폭되던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최성락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은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고 밝혔다. 유엔은 인구 10만명 당 연간 마약사범이 20명 미만일 때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한다.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으로 1만2613명이 단속됐다. 인구 10만명 당 24명으로,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인구 10만당 마약사범 20명 이하) 직위는 당연히 잃게 됐다.

마약사범이 증가추세라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대검 통계를 보면 마약사범은 2011년 9174명에서 지난해 1만2613명으로 37.5% 급증했다. 마약류 압수량도 2014년 162.2㎏에서 지난해 517.2㎏으로 크게 늘었다. 마약류 유통경로였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소비국으로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마약류가 부유층 및 특권층 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경남경찰청은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물뽕’(GHB)을 판매하려던 일당을 적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주소지가 제주도 포함돼 있었다. 이렇듯 전국이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 사범이 최근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한 마약공급 루트가 다양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식약처는 최근 ‘버닝썬’ 사건으로 문제가 된 이른 바 ‘물뽕’(GHB)을 비롯해 수면제, 마취제 등 온라인 상 마약류 판매 광고를 집중 모니터해 1848건을 확인,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광고 게시자 아이디(ID)와 인터넷 프로토콜(IP) 등을 추적해 광고업자를 검거하고, 이어 통신·계좌추적을 거쳐 마약류 판매상과 구매자 검거에도 나설 계획이다.

제주지방경찰청이 지난 2일 밝힌 도내 양귀비ㆍ대마 등 마약류 재배 적발 건수를 보더라도 최근 5년간 ▲2014년 6건(대마 6건) ▲2015년 3건(양귀비 1건·대마 2건) ▲2016년 4건(대마 4건) ▲2017년 6건(양귀비 1건ㆍ대마 5건) ▲2018년 3건(대마 3건) 등 22건(양귀비 2건ㆍ대마 20건)에 이른다.

한국이 2016년 이후 마약 청정국가 대열에서 멀어진 이유 중 하나로 낮은 처벌 수위가 꼽힌다.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마약과 관련해 어떤 행위를 했는지와 마약을 투약했다면 어떤 종류의 마약을 투약했느냐에 따라 처벌수위가 달라진다. 마약 중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마초는 흡입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마약을 해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2011년 가수 지드래곤은 대마초 흡입 혐의로 입건됐지만 초범에 극소량의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심지어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된 배우 기주봉씨(64)는 초범이 아니었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해 마약 투약 재범률은 32.3%를 기록했다. 마약사범 3명 가운데 1명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코카인, 아편, 필로폰, 대마초 등을 아우르는 마약류는 강한 환각성과 중독성을 갖는다. 투약자를 끝내 폐인으로 만들고 환각 상태에서 2차 범죄까지 유발한다. 19세기 영국과 아편전쟁을 치렀던 중국을 떠올리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다고 본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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