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 4·3 평화공원 찾은 유족 '통곡'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 4·3 평화공원 찾은 유족 '통곡'
  • 현대성 기자
  • 승인 2019.04.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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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온 가족 잃고 어렵게 자라도 가족 생각만 하면 눈물
모진 고문에 두 눈 멀었지만 동생들 안위부터 걱정

“비가 오면 눈물이 나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나”

3일 제주 4·3 71주년 추념식에 손녀와 함께 참석한 김연옥 할머니(77)는 혼자 바닷가에 나가는 일이 많았다.

김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4·3 당시 정방폭포 근처 바다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4·3 당시 집에서 끌려나가던 아버지를 붙잡다 몽둥이에 맞아 기절했고, 깨어나 보니 남은 건 머리에 생긴 아기 주먹만 한 상처뿐이었다.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신지 못한 고아로 자란 김 할머니는 “글을 배우지도 못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그때 끌려나간 가족들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며 “아버지 끌려갈 때 기절한 것이 가족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될지 몰랐다”며 흐느꼈다.

김 할머니처럼 4·3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희생자와 유족들, 그 가족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4·3평화공원을 찾아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척의 넋을 기렸다.

양경숙 할머니
양경숙 할머니

이날 4·3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만난 양경숙 할머니(96)는 “내가 눈이 멀어도 동생들 생각하면 매일 눈물이 난다”며 “두 남동생이 제삿날 끌려가 어디 간지도 모른 것이 70년이 넘었다”며 통곡했다.

양 할머니는 행방불명된 두 동생 대신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경찰들은 산에 도망간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며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구정물에 양 할머니를 빠뜨리기를 반복했지만, 양 할머니는 끝까지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양 할머니는 그 후유증으로 두 눈이 실명되고 왼손이 부러졌지만, 자신의 안위보다 동생들 걱정에 눈물을 흘렸다.

오문순 할아버지
오문순 할아버지

이날 4·3평화공원을 찾은 오문순 할아버지(85)도 “경북 금천에서 직장들 다니던 큰 형님이 제주에 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내려왔다 행방불명 됐다”며 “죽은 날짜도 몰라 형님의 생일인 음력 7월 23일을 기일로 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김형녀씨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김형녀씨

이날 외삼촌의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서 제주를 찾은 김형녀(57)씨는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이지만, 가슴 아픈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매년 추념식 때면 묘역을 찾고 있다”며 “외삼촌을 기억하기 위해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식구들이 인천, 천안에서 매년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은 김갑생 할머니(76)도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한 채 평생을 살았다”며 “그저 아버지가 동네에서 힘 깨나 썼다는 것 밖에 기억이 없다”고 울먹였다.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추가 희생자 인정 절차가 조속히 완료돼야 한다”며 “4·3 희생자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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