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크게 뜨고 보라"며 母 총살...고문 후유증 여전
"눈 크게 뜨고 보라"며 母 총살...고문 후유증 여전
  • 김나영 기자
  • 승인 2019.03.30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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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열여덟 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 개최
지난 29일 제주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려

“그들(서북청년단)은 눈앞에서 제 어머니를 총살했습니다.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기고문과 물고문 후유증으로 수면제를 먹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 밖에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제주4‧3 71주년이 다가왔지만 여전히 명예회복이나 보상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피해 생존자들이 겪었던 충격과 아픔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제주4‧3연구소는 지난 29일 제주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여덟 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을 개최했다.

‘그들 속의 4‧3 그 후 10년: 나는 4‧3희생자입니다’를 주제로 이어진 본풀이마당은 국가로부터 4‧3희생자와 후유장애자로 인정받지 못한 김낭규 할머니(79)와 강양자 할머니(77), 정순희 할머니(84)가 증언자로 나섰다.

김낭규 할머니
김낭규 할머니

김 할머니는 “산으로 도피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총살당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연좌제로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잃었다. 어머니 시신엔 손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있던 아버지의 위패는 4‧3희생자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려졌다”고 당시 아픔을 회상했다.

김 할머니는 “위패가 없는 걸 보고 대성통곡을 했다. 아버지 산소에 가서 울고, 집에 와서도 3일을 계속 울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고 항일운동도 했다”며 “아버지가 4‧3희생자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신청을 계속할 것”이라고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강양자 할머니
강양자 할머니

두 번째 증언에 나선 강 할머니는 6살 때 4‧3 당시 밭에 나갔다 행방불명된 외할아버지를 찾아다니다 돌무더기에 깔려 평생을 허리가 휘어진 채 살았다. 외할머니와 외삼촌도 희생됐다.

강 할머니는 “나는 4‧3희생자로 인정됐지만 결국 후유장애는 인정받지 못했다”며 “나는 4‧3으로 장애를 얻었다. 내가 왜 구차하게 후유장애를 거짓으로 신고하겠나. 정부에서 신고하라고 해서 신고했는데 인정하질 않으니 ‘국가가 날 의심하는 구나’라는 생각부터 앞선다”며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정순희 할머니
정순희 할머니

정 할머니는 불과 13살 나이에 도피자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북청년단에 의해 전기‧물고문을 당하고 어머니가 동네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총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언니와 나도 붙잡혀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애들은 아무 죄 없는데 쏘지 말라’고 해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며 “고문 후유증으로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수면제를 먹어도 한두 시간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할머니는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 할머니는 “지난해 정부가 후유장애 신고를 받는다 해서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몸에 총알이 박히거나, 손이 끊기거나, 다리가 잘리는 수준의 상처여야 한다’며 거절당했다”며 “4‧3으로 인해 억울했던 것을 다 풀어준다더니 제약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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