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로의 봄, 여행 이야기로 피어나다
전농로의 봄, 여행 이야기로 피어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3.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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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영 문화기획자·관광학 박사

전농로(典農路)는 제주시 이도1KAL호텔 사거리에서 용담1동 적십자 회관 사거리 사이에 있는 도로다.

전농(典農)’이라는 도로명이 있게 된 배경에는 제주도내에서는 최초의 중등 교육 기관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제주 공립농업학교가 있다. 1940526일 오현단 인근에서 현재의 삼성초등학교 자리인 삼도리 284번지로 이설하고 1977년 이 도로를 개설하면서 제주농고 70년사를 빛내 줄 것을 염원하는 의미로 명명됐다고 한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왕벚나무 가로수길이기도 한 전농로는 제주의 벚꽃 명소다. 매년 이맘때 터널을 이룬 왕벚나무 아래 벚꽃 잎이 흩날리면 상춘객들의 마음은 어느새 분홍으로 물든다.

지금부터 28년 전 제주 벚꽃 잔치라는 명칭으로 처음 개최됐던 제주 왕벚꽃 축제도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개최될 예정이다.

제주 왕벚꽃 축제의 거리, 전농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전시회가 있는데, 바로 전농로의 봄-여행전()’이다.

오랜 기간 전농로 초입에 터를 잡아 온 비영리 민간단체인 제주문화포럼이 개최하는 본 전시는 갈수록 다양화되고 일상화되는 오늘날의 여행을 주제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물건들과 그 물건들에 깃든 소소하지만 소중한 추억이나 사연들을 공유하고자 기획했다.

지난 22일까지 시민들로부터 접수된 전시 물품들은 지역적으로는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등 세계 각지를 반영하고 있다. 각각의 물건들이 어찌나 그 지역 하면 떠오르는 그러한 것들인지 새삼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물건들에 깃든 사연들 또한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는 기제로서 의미들이 담뿍 담겨있다.

생애 첫 배낭 여행지였던 이집트 카이로의 로컬 시장에서 산 클레오파트라가 그려진 파피루스 그림부터, 농업 국가인 라오스에서 만난 소로 밭을 경작하는 농부와 라오스 글씨가 수놓아진 공예품, 홀로 배낭여행 차 떠난 네팔 여행의 고생스러웠던 기억 그 자체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흙, 북유럽의 자작나무 숲의 기억을 간직한 자작나무 슬리퍼, 영국 유학이라는 인생 여정에서 힘이 돼 준 소설책,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이국의 어린 소녀가 그려준 낙서 그림에 이르기까지 참가자 각자가 품은 여행의 의미와 그 여행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물건들은 각양각색이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여행지 관련 전시 물품을 정리하면서 관광지 제주에는 어떤 물건들이 기념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국어사전은 여행(旅行)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로 정의한다. 여행의 의미를 영어 어원에서 찾는다면 영어로 여행 혹은 여행하다를 의미하는 트래블(travel)의 어원은 트라빌(travil)일 또는 일하다를 의미한다. 불어 트라바이에(traviler)는 여행하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가는 여정을 내포하고 있다.

어원적 의미를 떠나 여행은 누군가에게 지친 일상에 쉼을 제공하기도 하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에르네스토 게바라처럼 한 사람의 일생을 규정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농로의 봄-여행전()’은 낯선 곳,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지금의 일상과 연결해주는 고리이면서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인생의 봄날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지난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또 다른 여행에서, 그리고 인생의 여정에서 자신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본 전시는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전농로 문화공간 제주아트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제주문화포럼은 1997다양한 형태의 실천적 문화운동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로 나로부터 시작되는 문화운동이 문화복지가 돼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모토 아래 지난 22년간 우리의 문화와 현실에 대한 문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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