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추억
배신의 추억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3.2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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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제주평화연구원장·논설위원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가 없이 종료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러나 차기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후 지난 12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미국은 북한을 믿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북한은 1991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하였으나 이행하지 않았고, 1992IAEA의 원자력 안전협정에 서명하였으나 핵물질 신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하여 IAEA를 속이려고 하였다. 1994년 미북 간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농축 우라늄을 개발하면서 미국을 속였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하여 순진하다고 평가절하하였다.

미국의 예측대로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계속 속이면서 꾸준하게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20066자회담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오히려 핵 개발에 더욱 속도를 가했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깊어만 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에 이러한 미국 주류의 대북한 불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선 초기에는 북한에 대하여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지난해 6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 주류의 대북한 불신 기류를 학습하게 되었다. 이번 하노이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북한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으나 결국 북한이 그동안 보여 온 배신의 역사가 하노이 정상회담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우리 모두는 배신의 유혹을 느낀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은 이익 극대화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배신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기적이며 일회성이라는 것도 가르쳐 준다. 배신이 반복되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가져다주며 장기적으로는 자신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철학자 칸트는 이러한 점 때문에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을 도덕법칙으로 내세웠다.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속이지 말라고.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합의한 사항은 준수되어야 양 국가 간에 장기적인 이익의 공통점이 조성된다. 북한이 한국, 또는 국제사회와 체결한 합의는 준수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의 합의 불이행은 북한에게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불신을 초래하였고, 결국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된 것이다.

북한에게 있어서 하노이 회담의 실패는 북한 지도자의 무오류가 허구라는 것을 북한 지도층에 인식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김정은의 지도력에 보이지 않는 흠결이 생기고 말았다. 이는 결국 김정은 개인의 감성에 영향을 줄 것이며 북한 권력 내부에 긴장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를 성공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여 온 행동 양식에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행동을 언급한 것은 북한이 향후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말해 주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조금이라도 숨기고자 하였다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이 선택할 것은 배신이 아니다. 더 이상의 배신은 북한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지난 15일 북한 최선희 부상의 인터뷰를 보면 북한에게 배신의 추억은 아직도 달콤한 모양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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