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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길
봄 길
  • 제주일보
  • 승인 2019.03.19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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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의 봄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도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봉사활동으로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문학수업으로 정호승의 봄 길이라는 시를 다루게 되었다. 시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나누었다. 글쓴이의 마음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는 척 하는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알고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시를 통해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봄 길하나 만들기를 소망하며 수업을 이어 나갔다.

나에게 봄은 무엇인지 생각을 풀어놓게 하였다. 한 학생이 망설임도 없이 가장 먼저 여자 친구를 만나는 거요.” 라고 말하자 빵 터졌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은 가시밭길도 꽃길로 만드는 마술이 있지 않는가. 다른 학생도 각자의 소망 하나씩을 풀어놓는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여자 친구를 반갑게 만나는 장면과 각자의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상황을 떠올려 보게 했다. 눈빛이 반짝이고 봄꽃처럼 미소가 피어난다. 이미 마음은 봄 길에 서 있는 듯 하다. 부디 그 길을 걷다가 다시는 상처입지 않기를 바래본다.

매화, 목련꽃, 유채꽃 등 봄의 전령사들이 봄을 노래하고 있건만, 우리네 마음은 동짓달 바람이 파고드는 것처럼 시리고 춥다. 경칩에 겨울잠을 자던 생물들이 봄이 온 것에 놀라 깨어났는데 필자는 사회 부조리에 놀라 자빠질 지경이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얼마 전 보도에 의해 제주도의 쓰레기를 실은 배가 필리핀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정지역이라고 자부하던 제주도가 이제는 미세먼지의 공포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으니, ‘청정 제주라는 말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전국적으로는 아이돌 가수의 불법 동영상 유포 행태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더구나 정의의 편에 서야할 경찰관이 권력과 돈의 편에 섰다는 기사를 보면서, 정의의 강물은 얼어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온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 처럼 우리 곁에는 스스로 봄이 되고 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 길에는 작은 풀꽃들이 옹기종기 피어나고 새들이 노래한다. 부패의 늪과 권력의 칼 대신에 사랑의 샘물이 흐르고 정의의 나무가 숲을 이룬다. 그 길을 걷는 이는 누구나 행복하다. 그런 길이고 싶고 그 길을 걷고 싶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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