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마의 교훈
야쿠시마의 교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3.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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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전 제주일보 논설고문·논설위원

요즘처럼 세상이 흉흉할수록 공존과 공정은 삶의 최대 화두가 된다.

지난해 말 일본 규슈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60떨어진 야쿠시마(屋久島)를 찾았다.

원숭이 2, 사슴 2, 사람 2만을 합쳐 섬의 인구가 모두 6만명.

일 년이면 366일 비가 온다고 한다. 그만큼 비가 많은 섬이다.

탐방객들은 수령 7200년 된 삼나무를 보기 위해 야쿠시마를 찾는다.

야쿠시마는 1993년에 일본 제1호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 등재의 모델이 된 섬이다.

야쿠시마는 제주도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은 면적이면서도 해발 1935m의 미야노우라 산과 1800m 이상의 산이 6개가 있다.

감귤밭 방풍림 삼나무만 봐왔던 필자로서는 700년이 아니라, 7200년 나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방문 전부터 묘한 전율을 느꼈다.

이 삼나무의 이름은 조몬스기이다. 조몬은 신석기 시대를 뜻하는 일본어다. 스기는 삼나무를 말한다.

수령 1000년 이상의 삼나무에만 붙인다는 야쿠스기 가운데서도 조몬스기는 하나밖에 없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의 꼭 그 거리만큼 왕복 10시간에 걸친 산행 끝에야 만날 수 있다.

주름투성이 얼굴과 울룩불룩한 나무껍질, 거대한 몸통과 설킨 가지.

그 자체가 범접하기 어려운 신령한 존재처럼 보인다.

머리 다발 같은 뿌리들은 화강암 지면을 덮고 있었다.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낸 노인의 모습이었다.

조몬스기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탄소 측정 결과 최소 2500년 이상은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7200년이라고 믿는 것은 그만큼 나무가 살아온 연륜 때문이다.

기껏해야 100년을 사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넘보기 힘든 위대한 생존이다.

조몬스기가 오래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야쿠시마의 척박한 환경에 있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토양에서는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어 영양공급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삼나무가 일본 목조주택이 주된 속성수임에도 조몬스기는 재목감이 아니었다. 빨리 자랄수록 생명이 짧다.

야쿠시마 등반로에는 인간의 손길과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라산은 도처마다 깔린 행정당국의 과잉 배려가 오히려 불편함을 더한다.

산 아래 나무를 올려 계단을 만들고 야자수 줄기로 바닥을 깔고, 심지어 자동차 타이어로 억지 길을 만들고 있다.

야쿠시마는 달랐다. 계단을 만들어도 주변에 있는 돌과 나무뿌리를 연결해 가능한 한 인간의 개입과 간섭을 줄이고 있었다.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는 야쿠시마의 산행은 그렇다고 힘들기보다 오히려 산의 경외심을 더 해준다.

더 편하게, 그리고 일 분이라도 먼저 가려는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구좌읍 대천동 비자림로 바닥에 찢겨져 널브러진 나무를 볼 때마다 제 생살을 도려낸 것처럼 아프다.

원희룡 도정이 호기롭게 내걸었던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는 비자림로와 함께 도청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

리더는 자기 철학이 뚜렷해야 한다. 짧은 안목으로 휘둘러도 안 되고 휘둘려서도 안 된다. 비자림로는 철학 부재의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삼나무가 일본산 외래종이어서 베어야 한다는 억지 주장대로 라면 제주 들녘에 자라고 있는 야생화와 나무들은 거의 대부분 제거해야 한다. 제주 특산처럼 보이는 유채도 사실상 중국이 원산이다.

야쿠시마 농부이자 시인 야마오 산세이는 삼라만상은 모두 성스러운 존재라고 말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대상물이 아니라 공동의 집일 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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