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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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3.1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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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동국대 영상대학원 부교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는 역대 대통령의 어느 구호보다 가장 위대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닌가 싶다. 공정사회, 공정경제 그리고 갑질 근절 등이 그 연장선에 있으며 이는 심화하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지의 천명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현실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남았음을 느낀다. 아마 이 화두만으로도 지면을 못 채울 만큼 많은 얘기가 있을 수 있어 여기서는 정부 기관에 의해 불공정하게 역차별 당할 수 있는 민간에 대한 얘기만 하고자 한다.

제주가 불경기라고 도민이 한숨 쉬던 어느 때에, 불경기가 무색하게 우뚝 솟는 디자인이 뛰어난 건물들이 있었다. 그것이 의아해서 물어보면 어김없이 관공서 혹은 정부 기관 건물이었다.

디자인은 세계적인데 안에 들어가 보면 일반 관공서와 똑같은 배치와 쓰임새를 보며 이게 뭐지? 이럴 거면 그냥 사각 건물을 짓지, 왜 디자인을 넣어서 공간만 낭비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비단 제주뿐만 아니라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고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리 민간 사회가 불황이어도 정부 기관만큼은 돈 쓰는 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필자가 봉사로 관공서와 잠깐 일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자체 포함, 전국의 관공서, 정부 부처 단체들이 민간업체에 사업을 줄 때 깎지 말고, 중간 단체를 거치며 빼지도 말고, 제값을 제대로 주고, 제대로 된 퀄리티만 요구해도 우리나라가 훨씬 발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필자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정부 부처 혹은 산하단체가 하는 사업과 내리는 돈이 의외로 많다. 연구개발을 포함 그 많은 사업만 잘 집행하고 성과만 나왔어도 우리는 이미 4만달러로 들어서고 국민 편익은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 부처나 산하단체의 사업성과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하위에 속한다. 이렇게 계속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공무원들이 예산을 깎거나 기타 다른 서비스라도 요구해야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주문은 많은데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면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함에도 그렇다. 알고 보니 공무원들 나름대로 사정도 있었고 필자의 순진한 생각대로 진행될 수 없는 측면도 많았다.

그런데 내막을 깊이 들여다보면 가장 큰 이유는 불신이다. 사업을 주는 입장에서 민간 사업자를 믿을 수 없는 관행 같은 불신, 또 그 뿌리 깊은 불신을 제공한 여태의 관행이 이유다.

그 관행의 배경에는 불공정과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경험과 학습효과가 깊이 깔려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예산을 쓰고도 성과를 낼 수 없는, 정부 부처와 민간의 관계에서.

아쉬운 건 또 있다. 알다시피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는 많은 산하기관이 있다. 앞서 말했듯 연구개발을 포함해 많은 용역사업 등이 여기서 내려오는데 그 사업 중 예산이 크고 그래서 중요한 사업들을 같은 산하단체들이 대거 수주해 간다는 점이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지만 꽤 자주, 흔히 오랫동안 있어온 일이다.

우리 문화예술업계를 예로 들면 한국예술종합대학교(이하 한예종)는 교육부가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산하단체다. 그런데 같은 문체부 산하단체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큰 사업을 한예종이 자주 수주한다. 같은 중앙 부처에서 국장급 이상이 직접 관리하는 단체들끼리 어느 단체는 주고 어느 단체는 받는 것이다. 여기에 민간업체를 끼워서 공개입찰로 진행하는데 과연 공정한가? 그리고 민간에게 있어 기회로 평등한가? 정보 면에서 절대 공정하지도 평등할 수도 없는 구조다.

공무원들의 민간업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까지 감안하면 형식만 공개입찰이지 산하단체 내정에 가깝다. 세금으로 전액 운영하고 거기에 사업까지 얹어주니 이는 산하단체에 대한 이중특혜다. 무엇보다도 민간에게 내려 활성화되어야 할 자금이 정부 부처 안에서만 돌고 도는 셈이다.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이런 정부 부처의 행태가 민간에게 주는 위화감과 시름은 깊고도 크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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