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당시 여중생이 마주한 '비극' 글로 나오다
4·3 당시 여중생이 마주한 '비극' 글로 나오다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9.03.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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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생 할머니, 4·3수기집 평화재단에 기증
1948년 중학생 시절의 기억 원고지에 집필

“…(중략) 지서 위치를 알려줘도 죽이고 안 알려줘도 죽음을 당할 것이 뻔하므로 집 가까운데서 죽어야 부모님이 내 시체를 수습하기 쉬우니 그대로 여기에서 죽자는 배짱이 어디에서 솟구쳤는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고 온몸이 오그라든다(중략)…”

제주4·3의 비극은 당시의 여중생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71년이 지나도 또렷한 제주4·3의 기억이 110매의 원고지에 담겨 세상에 공개됐다.

김경생 할머니(88·연동)는 6일 제주4·3평화재단을 방문해 십여 년간 손 글씨로 집필한 ‘4·3수기집’을 기증했다.

김 할머니는 제주4·3이 발발한 1948년 당시 제주여중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김 할머니는 학교가 불타고, 5·10총선거를 거부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특히 낮에는 군·경, 밤에는 무장대의 위협으로 매일 불안에 떠는 등 4·3의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4·3이 끝난 후에도 트라우마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던 김 할머니는 생존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증언에 용기를 얻어 수기집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더듬어 중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가 수기집을 썼다”며 “응어리진 한을 글로 풀어낸 수기집이 4·3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로부터 수기집을 건네받은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4·3에 대한 기록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 수기집을 기증해 준 김 할머니에게 감사드린다”며 “많은 사람들이 수기집과 관련 사진들을 볼 수 있도록 디지털 작업을 거친 후 아카이브 자료로 등록하겠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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