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비’와 인생 한 手
‘꽃 비’와 인생 한 手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3.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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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주 주필/부사장

어느새, 봄이다. 소리치고 들이치고 부딪치고 몰아치는 세상사가 계절을 잊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일에 무심하다. 아무도 꽃을 말하지 않아도 때맞춰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올 봄에도 매화가 꽃길을 열었다. 암향부동(暗香浮動), 설한(雪寒) 속에 떠도는 은근한 향기는 본디 매화의 일이다. 곧이어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이달 하순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겠지.

봄꽃 중에서 단연 으뜸은 벚꽃이다. 해마다 기상청이 벚꽃 개화 예보를 하는데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동안 기상청 예보에 맞춰 벚꽃 축제를 준비하고 꽃놀이 행차를 계획했는데 꽃이 피지 않거나 꽃이 다 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축제를 주최하는 측이나 꽃놀이 가는 주민들이 엄청 항의해대니 기상청이 꽤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기상청 벚꽃 예보가 사라진 배경이다.

 

올해 벚꽃 예보는 민간 기상업체에서 나왔다. 두 민간 기상업체에서 내놓은 벚꽃 개화 예보는 조금씩 다르고 지역별로도 편차가 있지만, 종합해 보면 올 벚꽃이 평년보다 4~5일 정도 빨리 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업체는 제주에서 벚꽃 개화 시기를 오는 22일로 예측했다. 또 다른 업체는 보다 더 빠른 개화를 예보했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평년보다 4~7일 빠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업체 역시 2~3월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을 것이란 전망을 빠른 개화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제주 개화 시기는 이달 21일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20191월 지구 대륙 및 해양의 기온이 1880년 이후 관측된 기록 중에서 세 번째로 따뜻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마당이다.

따뜻한 겨울만큼이나 올 벚꽃 소식이 빨라졌다. 그리고 5월 중순이면 여름 더위가 올 것이다. 봄꽃을 즐길 상춘(賞春)의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물을 건너고 또다시 물을 건너 여기저기 꽃을 보고 가노라면 봄바람도 강을 건너 스쳐 오는데, 어느 틈에 그대 집에 이르렀구나.”(渡水復渡水 看花還看花 春風江上路 不覺到君家)

중국 원() 말 명() 초에 살았던 청구자(靑邱子) 고계(高啓, 1336~1374)가 쓴 시다.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봄 정경과 여유로움이 한없이 느껴진다. 이렇게 봄처럼 우리 마음을 여유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계절이 또 있을까.

이제 곧 제주시 전농로와 제주대 입구 등에는 화사한 벚꽃이 분홍빛 뭉게구름이 되어 거리에 늘어설 것이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꽃잎은 비가 돼 쏟아질 것이고. 꽃비가 내린 거리는 화려한 분홍빛 세상이 되리라.

책만 읽을 줄 알고 꽃을 감상할 줄 모르면 풍류를 잊는 얼간이라고 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꽃비를 맞으며 걸어볼 생각에 벌써부터 심쿵해진다.

 

아침, 밝은 색 셔츠로 갈아입으며 엉뚱한 생각을 한다. 만약 벚꽃에 마음이 있다면 피었다가 곧 바람에 떨어지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시간이 짧다고 혹은 덧없다고 아쉬워하거나 슬퍼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아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꽃이 져야 나무는 새 잎이 나고 성장하며 열매를 맺는다. 꽃이 지는 것은 아쉬움이나 덧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고, 생명의 이어감이다.

꽃은 주어진 시간 동안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지극히 아름답게 피워낼 뿐이다. 시들고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피워냄을 주저하는 일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름답게 피고 질 수가 없다.

올 봄 벚꽃 축제에 가서 화사한 연분홍 꽃비도 맞아보고 인생 한 수()를 배우면 행복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밝은 셔츠에 그랬듯 자연스레 작은 행복이 내 얼굴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웃음도 행복도 전염된다고 하니까. 나부터 행복을 느끼면 되겠다.

연일 신문 지면을 불태우는 번잡한 세상사를 빌미로, 이 봄의 황홀을 놓치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나 아깝지 아니한가.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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