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100m 비경, 하늘 닿은 고봉
해발 5100m 비경, 하늘 닿은 고봉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3.01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우리말의 고향 알타이를 가다(6)
해발 5100m에 달하는 고봉 정상에서 마주한 양 떼. 맞은 편에는 알타이 산맥 중 두 번째로 높다는 뭉흐하이르항 산 정상이 보인다.
해발 5100m에 달하는 고봉 정상에서 마주한 양 떼. 맞은 편에는 알타이 산맥 중 두 번째로 높다는 뭉흐하이르항 산 정상이 보인다.

일곱 개의 호수를 가진 뭉흐하이르항은 만년설이 쌓인 산으로 우리 일행이 도착한 도손노루는 거대한 협곡입니다.

계곡 양안(兩岸, 양쪽 언덕) 군데군데 있는 작은 풀밭에는 게르(Ger) 몇 개와 수많은 양과 야크가 모여 있는데 이곳이 여름철 방목지랍니다.

해가 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 계곡의 거대한 절벽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며 금방 추워집니다. 풀을 찾아 계곡 능선으로 나갔던 양들이 게르 쪽으로 모여들자 몽골 여인들은 양들 뿔을 서로 엉켜 길게 묶어 젖을 짭니다. 몽골의 다른 지역에서 봤던 양젖 짜는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몽골 아이들이 양털 깎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몽골 아이들이 양털 깎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멀리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몽골 아이들이 우리가 있는 게르로 몰려와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난데없이 우리 일행이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더 어두워지기 전 식사를 마치기 위해 서둘렀지만, 산 속이라 해가 금방 져서 기온이 뚝 떨어집니다.

게르 주인과 이웃 몽골 사람들이 모여 앉자 말은 통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느낌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나눴습니다.

게르 밖에 나와 하늘을 보니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습니다. 몽골 밤하늘은 어느 곳에서나 별들이 찬란하지만, 이곳 도손노루는 깊은 산 속이라 그런지 더욱 특별합니다.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린 몽골 여인.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린 몽골 여인.

게르 안 난로에 불을 땔 때는 따뜻하다가 불이 꺼지면 온기가 싹 사라지면서 엄청 춥습니다. 밤늦게까지 불을 때서 따뜻했지만, 새벽에는 얼마나 추운지 있는 옷을 다 껴입어도 턱이 덜덜 떨릴 정도입니다. 지난해 왔을 때는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았었는데 아마도 계곡 안이어서 더 추운 것 같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붉게 물든 뭉흐하이르항 정상을 촬영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더니 양과 염소들이 게르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추위를 피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자 뭉흐하이르항 정상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데 양과 야크들이 풀을 찾아 길을 나설 준비를 하는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자 계곡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양털로 만든 침낭을 써서 게르 밖에서 잠을 잔 운전사 남사르도 양들이 떠드는 소리에 깼는지 팬티만 걸친 몸으로 나오더니 차가운 계곡물로 목욕을 합니다. 몽골 사람은 추위를 못 느끼는 것인지 놀랍습니다.

우리 일행은 도손노루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사이 뭉흐하이르항 산 정상을 마주 볼 수 있는 반대쪽 산을 오르려 하는데 울찌가 동행하겠다고 합니다.

얼른 보기에는 한나절이면 올라갔다 올 것 같아 별 준비 없이 카메라만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돌무더기로 이뤄진 산길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지만, 이왕 나섰으니 꼭 정상에 오르리라 다짐하고 힘을 내봅니다.

그런데 아래서 봤던 첫 봉우리에 올라서니 상상했던 것보다 지형 변화가 전혀 달라 깜짝 놀랐습니다. 아래에서 볼 때는 첫 봉우리만 올라서면 금방일 것 같았는데 겹겹이 봉우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봉우리를 올라도 아직 정상은 멀기만 합니다.

함께 가겠다고 나선 울찌는 어느새 보이지 않습니다. 힘이 들었던지 먼저 내려간 것 같습니다. 잠시 쉬면서 어쩌지?’ 하고 생각하다가 시간도 충분하니 꼭 정상에 올라 뭉흐하이르항 전경과 일곱 개의 호수를 찍어보자고 결심하고 다시 힘을 내 길을 재촉했습니다.

물도 없이 무모한 도전에 나선 것을 자책하면서도 언제 다시 여기를 오를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오늘이 아니면 다시 오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있는 힘을 다해 올랐습니다.

힘겹게 일곱 개 봉우리에 다 올라서자 그제야 마지막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뭉흐하이르항 산 정상(해발 5500m) 반대쪽에 있는 제2(5100m)입니다.

목이 타고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멀리서 양 떼들이 몰려오고 있어 허겁지겁 기어올라 양 떼와 뭉흐하이르항 정상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도손노루 계곡 안에 있는 한 게르(Ger) 옆에서 몽골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면 놀고 있다.
도손노루 계곡 안에 있는 한 게르(Ger) 옆에서 몽골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면 놀고 있다.

한참 정신없이 촬영하고 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정신이 몽롱합니다. 등짝이 갈라질 것처럼 아파서 무슨 일인가 하고 몸을 흔들었으나 꼼짝할 수 없습니다. 천천히 호흡하며 하산하는데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이 듭니다. 오를 때는 몰랐는데 얼마나 가파른지 발톱이 다 빠지는 것 같습니다. 한 발 한 발 아주 천천히 내려가는데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구나하면서도 정상에서 좋은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내려와 게르에 도착하니 딸 경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고 울먹입니다.

아픈 등에다 파스를 붙이는데 한 몽골 사람이 저기를 올라가 그런 것이라며 조금 있으면 괜찮을 거랍니다. 아마도 고산증세인 듯합니다.

제 생애 가장 높은 해발 5100m의 산을 처음 오르고 정상에서 양 떼까지 만날 수 있었습니다. 힘이 들었지만 가장 기분 좋은 도전이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