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 가담 ‘명백한 억측’…제대로 평가 받아야”
“북한 정부 가담 ‘명백한 억측’…제대로 평가 받아야”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9.03.0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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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3·1절 100주년] 
송종현 선생, 사회주의 계열 제주 항일운동 선봉
두 차례 옥살이…당시 재판부도 '독립 운동' 인정
유족들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불구 번번이 '무산'
“이념 잣대와 잘못된 추측으로 평가 외면” 토로
송동호 원장
송종현 선생 손자 송동호씨.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배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했다…징역 3년을 선고한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27세 청년에게 내려진 판결이다.

일제강점기 재판부도 공식적으로 그의 항일운동을 인정했지만 정작 모든 걸 내던지고 되찾아온 조국은 여전히 그를 외면하고 있다.

조국이 독립하고 3년 만에 눈을 감은 송종현 선생(1901~1945년).

의로웠고, 정의로웠고, 억압에 맞서 목숨까지 내놓았지만 그의 숭고한 희생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항일운동사의 어두운 그림자 안에 갇혀있다.

■ 이념 잣대에 막힌 항일운동

송종현 선생의 손자인 송동호씨(아이레그 플러스 의원 대표원장·65)는 이미 1989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할아버지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9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무색할 만큼 “행적이 불명확하다”는 똑같은 이유로 항일운동 공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송종현 선생은 1925년 제주에서 ‘반역자구락부’라는 항일 청년 단체를 조직했다.

또 제주 항일운동의 중심적 비밀결사 단체인 ‘신인회’를 조직했으며,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의 제주지회 창립을 이끌어 지회장을 맡았다(본지 2월 18일자 10면).

제주의 항일운동을 진두지휘하면서 두 차례나 검경에 체포돼 옥살이까지 했지만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념의 잣대에 가로 막혀 후대에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은 “당시 제주의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들은 농민(노동자) 계급 해방보다는 ‘민족 해방’을 전면에 내세웠다”며 “소비에트의 사상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 소작농 계급이 없는 제주에서 자라 신교육을 받은 청년들은 계급 해방이 아닌 조국과 국민들을 일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택한 것이다.

송 원장은 “국가보훈처는 해방 전·후와 사망 때까지의 할아버지 행적이 명료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할아버지가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라는 점과 황해도 해주에서 사망했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고 추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故 송종현 선생의 생전 모습
故 송종현 선생의 생전 모습

 

■ 북한 정부 수립 일조 ‘억측’

국가보훈처가 서훈 탈락의 이유로 든 ‘불명확한 행적’은 이미 유족들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졌다.

송 원장은 “광복 직후 할아버지는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며 작은아버지에게 ‘우리가 살 집이 한 채도 없구나. 이제 독립했으니 집안을 먹여 살려야겠다’고 말씀하셨다”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북한을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기자 출신인 송종현 선생은 광복 이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해주와 제주 등을 오가며 물품 교역에 나섰다.

송 원장은 “할아버지가 교역의 거점으로 해주를 선택한 이유는 큰 딸이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송종현 선생은 투옥 중 앓게 된 폐결핵 등 지병이 악화되면서 1948년 8월 17일 해주에서 타계했다.

공교롭게도 송종현 선생의 사망 시점은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된 지 이틀만이었고, 북한 정부 수립을 위한 ‘해주 인민대표자대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이었다.

송 원장은 “할아버지가 남한 정부 수립에 반대해 해주 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하는 등 북한 정부 수립에 일조하기 위해 해주에 상주하다가 사망했다는 판단은 억측”이라며 “더욱이 병으로 돌아가실 만큼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고, 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타계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제4차 국가보훈발전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사회주의 계열 활동가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의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적극적으로 포상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 원장은 “더 이상 서훈을 신청할 의지가 없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왜 후손들이 정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부탁하고 의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버지도 의대 재학 중 연좌제로 모진 고문을 받아야했다. 독립 운동가들이 되찾은 조국이 독립 운동가들을 제대로 예우해주고 있는 지 아쉬울 뿐이다”고 얘기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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