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시인 ‘김수영’
뜨거운 시인 ‘김수영’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2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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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 김수영(金洙暎)이 현실적 자유주의의 절정을 노래한 의 전문이다.

풀은 개인 또는 민중일 수 있고, 너인 동시에 나일 수 있다. 바람의 구속을 거부하고 풀의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이를 위한 정치적 자유를 옹호하고 있다.

김수영은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이승을 하직했다. 시인은 반주류(反主流)를 상징하며 현실을 비판한다. 시인은 당대에 부재한 자유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노래한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시인은 으레 정치적 자유를 노래한다. 주류의 처지에서 보면 그들은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세력이다.

시인과 대치되는 속물(俗物, snob)’은 원래 지위가 낮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지배계급과 중산층 이상의 사회에서 유행만 좇는 귀족이나 잘난 체 하는 어리석음과 겉치레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바뀌었다. 속물주의(俗物主義)는 금전이나 명예 따위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눈 앞에 닥친 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행동하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보인다.

 

유명이 유명을 먹고, 더 유명한 것이 덜 유명한 것을 먹고 덜 유명한 것이 더 유명한 것을 잡아 누르려고 기를 쓴다. 이쯤 되면 지옥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의 대제도(大制度)는 지옥이다. 이 지옥 속의 레슬러들이 속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속물이다. 아무 것도 안 붙인 가슴보다는 지옥의 훈장이라도 붙이고 있는 편이 덜 허전하다.”

 

시인 김수영이 동서문화에 에세이 이 거룩한 속물들을 쓴 것은 그가 횡사하기 한 해 전인 1967년 봄이다.

그는 여기에서 5·16 이후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꿔 살아야 했으며, 세상의 거악에는 팔뚝질 못 하고 설렁탕에 왜 고기가 이거뿐이냐고 심술이나 부리며 사는 소시민의 속물성, 그 자체를 거침없이 자학하고 힐난했다.

속물은 모든 걸 돈으로 본다. 관직도 돈이고 시간도 돈이다. 밥상을 살리는 땅도 평당 얼마로 환원되는 부동산일 뿐이며, 사랑의 보금자리인 집도 고수익을 남기는 투자 대상일 뿐이다.

속물들은 땅에 투자하면 속지 않는다는 뜻으로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속물들은 공직자 청문회에 나와 땅을 사랑하기 때문에시골에 농지를 사놓았다고 뻔뻔스레 말한다. 사람이 돈의 논리로 무장한 것이 속물주의다.

419혁명을 통해 김수영은 비로소 시인으로 완성된다. 난해시에서 참여시로, 서정시에서 혁명시로 나아가던 그는 4·19 전에 내놓은 ……그림자가 없다에서 이미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고 하며 혁명을 예감한다.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적으로 싸워야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의 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체의 권위주의를 거부한다. 또한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추상적 자유주의를 넘어선 구체적 자유주의를 요청한다.

시인 김수영이 너무 그립다. 그의 사후 5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김수영 전집결정판이 출간돼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문학에서 김수영은 여전히 뜨거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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