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기획] '병학(兵學)의 성전(聖典)'과 '실크', 중국 양대 보물 하나로...
[제주일보 기획] '병학(兵學)의 성전(聖典)'과 '실크', 중국 양대 보물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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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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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孫子兵法)

어려서부터 헌책을 좋아해서 집 주변의 작은 헌책방들을 찾아다녔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그 시절에는 당연히 주머니가 더 부실했고,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건 고철이나 공병, 신문 등을 모아 돈으로 바꾸는 거였다. 그러다 어머니에게 들켜서 ‘넝마주이가 꿈이냐’고 꾸지람을 받기도 했지만,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맘에 드는 책을 한 권씩 사는 재미에 그만 둘 수 없었다.

성년이 되어서도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버릇은 계속되었고, 그 습관은 중국에서 지냈던 8년 여 동안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으레 주말이면 베이징(北京)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헌책을 파는 서점이나 노점들을 순례했고, 숙소로 돌아올 때면 등에는 책으로 가득 찬 큰 배낭을 메고, 양 손에는 커다란 책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환율도 좋았고 물가도 퍽이나 쌌기에 여전히 빈약한 주머니 사정에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처음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한 3주일 정도는 거의 매일 서점가를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가성비 높은 책들을 사들였다. 그 땐 한 권이라도 더 살 욕심에 그 무거운 책 짐을 들고도 숙소까지 우리 돈으로 1000원이면 되는 택시를 탈 생각도 못하고 50원이면 충분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러다 마침내는 팔의 인대가 늘어나서 밥을 먹을 때 숟갈질조차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되기도 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中·英文版,杭州出版社,2004) 영역문 첫부분

당시 베이징에서는 책 읽기 좋은 계절에 큰 책 시장(書市)이 열렸다. 이 때 출점하는 출판사나 신·구(新舊)서점들은 그들이 가진 재고서적을 파격적인 가격에 할인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같은 책이 여러 권 나온 귀한 자료를 운 좋게 만나면 몇 권 더 사서 지도교수님과 사형(師兄 선배)에게 선물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나 사형도 특이한 책이 있으면 ‘책 좋아하는 네가 가져라’며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책들은 대부분 내가 중국에 오기 전에 절판되었거나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 중에 한 권을 소개하자면 '손자병법(孫子兵法)'(中·英文版,杭州出版社,2004)을 들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유명한 책이 무에 그리 특별할까 싶으실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건 그 재질에 있다. 다들 책을 뭘로 만들지 하면 떠올리게 되는 건 당연하게도 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부 실크(絲綢)로 만들었다. 본문과 속지뿐만 아니라 책 표지도 운학문(雲鶴紋) 실크로 감싸고 표지에 붙은 손자의 초상화조차도 실크로 만든 것이다.

그럼 왜 책을 실크로 만들었을까? 1998년 중국손자병법연구회가 쓴 서문을 보면, 그 이유는 ‘병학의 성전(兵學聖典)’이자 중국의 보물인 이 책과 또 다른 보물인 실크를 ‘하나로 만들어서(合爲一體)’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대외문화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즉 중국의 양대 보물을 온 세상에 자랑하기 위함이다.

송십일가주본(宋十一家注本)을 저본(底本)으로 원문과 백화(白話 구어체) 번역문을 싣고, 각기 영·불·독·일어 번역문을 수록해서 모두 4종으로 간행되었다. 실용적으로 읽기에는 불편한 책이지만, ‘손자병법’과 ‘실크’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을 보니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올해에는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뵐 수 있을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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