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슬픈 설맞이
어느 노부부의 슬픈 설맞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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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제주문화창의연구회장

군 입대한 손자가 첫 휴가를 왔다.

지난해 3월에 입대했으니 첫 휴가치고는 너무 늦었다. 왜 늦었냐고 물었더니 설 명절을 맞추다 보니 그랬단다.

그간 두서너 번은 왔다 갈만한 휴가 기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미룬 것은 미뤄뒀던 날짜만큼 휴가 체류 기간이 연장되는 장점과 장손이면 마땅히 설 명절 차례도 지내야 하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그리 싫지 않은 말이라 마냥 기특하기만 하다.

평소 손자와 나는 우리의 전통문화 혹은 설 명절에 관한 대화를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녀석은 이미 그가 장손으로서 행해야 할 예절과 법도, 행실과 도덕 등은 물론 설이 갖는 의미마저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원일(元日), 정조(正朝), 신일(愼日), 달도(怛忉) 등은 새해 첫 날을 맞이한다는 의미이면서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원하는 날이다.

동시에 이웃과 친척에게는 과세 인사를 드리고 조상에게는 경배와 차례로서 그 음덕에 감사함을 표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설 명절에 고향을 찾아 과세 인사를 못 하거나 차례 혹은 성묘를 못 하는 것 만큼 불충·불효는 없다는 것을 손자는 깊이 새기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7세기부터 이어져 온 은 이미 우리 민족에게 빼어놓을 수 없는 민족의 대명절이 된지 오래다.

고종 32년 태양력(양력)이 수용됐어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음력설은 그대로 고수할 만큼 설 명절은 우리 민족에 있어서 명절 이상의 신앙처럼 지켜왔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문화 말살 정책에도 우리 고유의 설 명절을 지켜냈으며 광복 후에는 신문화 정책 혹은 국제화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양력설을 유도하기도 하고 양력설과 음력설이라는 이중과세와 함께 민속의 날이라는 족보 없는 이름까지 붙여졌음에도 끝까지 그 전통을 지켜 내려옴으로써 결국 1989년도 음력 11일부터 설날이라는 우리 고유 명칭을 되찾게 됐고 3일간의 설 연휴마저 지정받게 됨으로써 설을 쇠려는 민족 대이동의 전통문화가 기쁨으로 출렁대는 명절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쁘고 즐거운 설날도 어떤 이에게는 그다지 기쁘기만 한 명절이 되지 못한 사연이 있어서 안타깝다. 육지에 사는 친지에게서 새해 인사와 함께 묻어온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서 그렇다.

어느 시골에 사는 노부부에게는 3대 독자 외아들과 하나뿐인 손자, 그리고 며느리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마다 남들처럼 추석이나 설 때면 아들 식구가 시골로 내려와 다른 가정들처럼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하는 다복한 가정이었건만, 3년 전 그 아들이 병으로 죽고 말았다는 거다.

그리고 2년 전 며느리는 하나뿐인 손자를 데리고 재가를 하더니 지난해는 재가한 며느리가 그 손자의 성과 이름을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비롯된 일이다.

노부부는 하루아침에 가계를 이을 손자를 잃고 만 것이다. 성도 이름도 바꿔버린 손자에게 집안의 제사와 묘소 관리는커녕 종손의 역할마저 옳게 기대할 수가 없게 됨에 따라 세상에 남의 집 문중 문 닫게 하는 이런 놈의 법도가 어디 있느냐고 발버둥 쳐봐도 소용이 없게 됐다.

온 나라가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이 설 명절에 허리 휜 노부부의 애끓은 통곡 소리라니 웬 말인가.

휴가 일정을 마치고 귀대 길에 오르는 손자의 뒷모습을 보며 그 노부부 외동 손자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돼 내 눈물이 아프도록 마렵다.

하여 이 눈물이 오직 나 혼자의 단순한 감정에서 비롯된 눈물이 아니길, 또 이런 일이 이 나라 어느 가정에서도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되는 법도가 세워지길 나라님께 빌어 본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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