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기획] ‘다니면 곧 길이 된다’…황홀한 몽골 초원
[제주일보 기획] ‘다니면 곧 길이 된다’…황홀한 몽골 초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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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우리말의 고향 알타이를 가다(5)
드넓은 몽골초원은 길이 따로 없다. 아무 곳이나 다니면 그 곳이 곧 길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속 모습 또한 몽골의 한 풍경이다
드넓은 몽골초원은 길이 따로 없다. 아무 곳이나 다니면 그 곳이 곧 길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속 모습 또한 몽골의 한 풍경이다

알타이산맥을 찾기 전 몽골 동쪽에 있는 테르힝 차간노루란 호수와 커다란 분화구가 있는 곳을 갔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넓은 초원에 야크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수백 마리의 재두루미가 함께 어울려 먹이를 찾고 있어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몽골 초원은 재두루미들의 번식지랍니다. 겨울에 멀리 인도까지 날아갔다가 봄이 되면 이곳으로 날아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초가을이 되면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비행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면 제트기류를 이용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로 향한답니다.

넓은 초원에서 수백 마리의 재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있다(왼쪽).
넓은 초원에서 수백 마리의 재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강가에 갔더니 이름 모를 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있는데 멀리 재두루미 한 쌍이 보입니다. 이때 즈음에 몽골 초원에서는 각종 야생조류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재두루미들이 알을 품는 모습이나 갓 부화한 새끼들과 함께 초원을 걷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어제 저녁 어디서 잤는지 새벽에 온 운전사 남사르가 오늘은 가는 길이 멀지 않아 천천히 가도 된다며 서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에서 머리를 감아보려 준비하는데 울찌가 다가오더니 몽골에서는 강에서 목욕하거나 빨래를 하면 안 됩니다라며 머리를 감고 싶으면 물을 떠서 좀 떨어진 곳에서 하라고 합니다. 오래 전 칭기즈칸 시대 때부터 물을 더럽히는 것을 엄중한 벌로 다스려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몽골 사람들은 습관처럼 지켜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몽골에 왔을 때 들어 알고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잊어 강에서 머리를 감을 뻔했습니다.

지난해 방문 때 차로 건넜던 강인데 또 건너려니 잔뜩 겁이 났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엉덩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 남사르가 걱정 말고 앉으라고 손짓합니다.

차는 순식간에 거센 물결의 강을 건너 가파른 언덕을 오릅니다. 그런데 지난번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광이 펼쳐집니다. 거북이 또는 사람처럼 생긴 바위들이 넓은 초원 곳곳에 서 있어 ~’하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옛 무덤 앞에 세워진 이름 모를 석상. 제주의 동자석과 크기가 비슷하다.
옛 무덤 앞에 세워진 이름 모를 석상. 제주의 동자석과 크기가 비슷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드넓은 초원길. 달리고 달려도 제자리에 있는 듯 보이는 몽골 초원은 황홀할 따름입니다. 이런 초원을 처음 본 딸 경리는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한참을 달려 높은 언덕에 올라서더니 잠시 쉬고 가자는데 그 앞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분지 같습니다. 알타이산의 한 분지랍니다. 앞을 보니 내려가는 길이 너무 가파른 듯 보여 저곳으로 내려가느냐?”고 묻자 남사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스라이 길은 있지만, 경사가 70~80도는 되는 것 같아 보기에도 아찔한데 어떻게 저 길로 내려갈 것인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정작 남사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운전대를 잡습니다. 차는 천천히 빙빙 돌며 가파른 언덕길을 쉽사리 내려갑니다.

앞 좌석에 앉은 터라 얼마나 겁이 났던지 언덕을 다 내려올 때까지 눈을 질끈 감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이리저리 비틀거리던 차가 평온해지자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떠보니 길고 긴 초원길이 일직선으로 뻗었습니다. 바닥에는 키 작은 야생화들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려 멀리서 온 나그네를 반기는 것 같습니다. 언덕 위에서 볼 때도 상당히 넓은 분지 같았는데 직접 내려와보니 그 길이가 정말 대단합니다.

차는 분지 안을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어 섭니다. 남사르가 앞을 가르키며 얼른 내려 사진을 찍으라는데 멀리서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뭔가가 달려옵니다.

엄청나게 넓은 분지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나담축제가 열렸는데 그 중 말 경주라고 한다.
엄청나게 넓은 분지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나담축제가 열렸는데 그 중 말 경주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한 무리를 사람들이 말 타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 지역에서 나담축제가 열렸는데 그 중 말 경주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랍니다.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우리 앞을 지나 반환점을 돌아 골인 지점으로 달려갑니다.

이들을 쫓아 가니 넓은 벌판에서 나담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잠시 차를 멈추고 남사르가 몇몇 사람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지난해 방문 때 우리 일행에게 선뜻 게르(Ger)를 빌려줬던 가족들이었습니다. 마침 당시 찍었던 사진이 있어 전해줬더니 무척 좋아하며 아이락(마유주)과 양고기를 꺼내 같이 먹자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축제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험한 계곡을 돌고 돌아 마침내 뭉흐하이르항 산 정상 아래 있는 도손 노루에 도착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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