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외모지침’ 유감
‘아이돌 외모지침’ 유감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9.02.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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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미국의 청년층이 주도한 ‘히피(hippie)’ 열풍이 세계로 퍼져갔다.

히피는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이 주체가 돼 시작된 탈사회적(脫社會的)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물질문명이나 국가ㆍ사회제도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기존 기성세대의 잘못된 제도와 가치관을 부정했다.

자유로운 ‘히피’ 분위기는 곧 우리나라 청년층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군사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가만두지 않았다.

정부는 1971년 10월 1일 ‘사회윤리와 질서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를 대상으로 퇴폐풍조 단속에 나선다’라고 발표했다.

당시 보도사진에는 가위와 바리캉, 30cm 자를 들고 장발족 청년의 머리를 깎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의 치마길이를 재고 있는 경찰의 모습이 촬영돼 있다.

머리 깎기를 거부할 경우 경범죄가 적용돼 즉심에 넘겨졌다. 특히 ‘외국인 장발족 입국불허’ 방침까지 밝혀 국제적인 망신거리를 자초하기도 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972년 10월 말까지 8만3000여 명이 머리를 깎이고 1만2000여 명이 즉심에 회부됐다.

사회의 기풍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프라이버시’ 규제가 정당화되던 시절이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최근 제작ㆍ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안내서는 ‘음악방송 출연 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는 제목의 사례에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은 심각하다”며 “대부분의 출연자가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출연자들의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외모는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외모지상주의를 지양하고 다른 외모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인데,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는 부분이 논란이 됐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를 두고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이냐”며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여가부는 논란이 일자 지난 19일 “방송에서 보이는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는 일반 성인뿐만 아니라 아동ㆍ청소년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며 “프로그램 제작할 때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는 차원에서 부록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안을 검열, 단속, 규제로 해석하는 것은 안내서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방송 제작을 규제할 의도가 없으며 그럴 권한도, 강제성도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외모 가이드라인은 서구사회에도 존재한다. 프랑스는 2015년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공중보건법을 제정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페인 마드리드 패션위크도 말라깽이 모델이 출연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그렇다. 2006년 우루과이 출신의 패션모델 자매 루이셀 라모스와 엘리아나 라모스가 과도한 다이어트로 숨진 뒤 만들어진 모델 보호 장치이다.

현대인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를 소비하면 살아간다. 특히 일부 청소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미지를 추종해 성형을 하면서‘성괴’(성형괴물), ‘의란성 쌍둥이’(성형외과 의사가 만든 판박이 얼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여가부가 밝혔듯이 현대 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다. 다양성이 무너지면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진다. 그리고 대중은 우매하지 않다. 정부가 아이돌 외모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면서 국민에게 끼칠 부정적 영향을 사전에 막겠다는 것은 아직도 국민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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