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송종현 선생의 경우
독립운동가 송종현 선생의 경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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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현이라는 이름이 있다. 1920~1930년대를 대표하는 제주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해방 후 남한노동당(남로당)과도 관련이 없고 북한 정권 수립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좌우합작 통일정부만을 희원했다. 일제하에서 감옥에서 얻은 폐결핵이 도져 서울에서 쌀장사를 하다가 남북이 서로 갈라지던 그해 19488월 생애를 마감했다.

6개월형과 3년형, 두 번이나 옥고를 치를 만큼 불굴의 독립투쟁을 펼쳤고 친북 활동의 전력이 없었음에도 다만 사망 전에 이북 해주에 있는 친척과 통교했다는 이유로 한평생 조국 독립에 헌신한 업적이 인정받지 못했다.

송종현은 일제하 제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을 이끈 반역자 구락부와 사회주의 항일운동 그룹인 신인회의 주도자이다. 그는 또 1927년 전국의 좌우익이 합작해 설립한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의 제주지부장이기도 했다.

1917년에 러시아혁명이 성공하면서 전 세계엔 공산주의 사상이 유행됐다.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했고 사회주의 사상을 신앙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송종현이 항일운동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택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이다. 그는 짧은 일생을 이 나라 독립에 바쳤다. 당연히 국가는 그의 독립운동 업적을 서훈해야 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미루고 있는가. 그가 이끌었던 신인회의 참여 인물들인 강창보 선생 등도 서훈을 받았다. 그가 오해를 받았던 1928년에 조선공산당 가입도 문제가 될 수 없다. 당시 조선공산당 책임 비서였던 김철수 선생을 정부가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한 마당이다.

이제 광복 74년이다. 우리는 반쪽짜리 독립운동사를 복원하고 역사의 진실에 보다 다가서야 한다. 독립운동에 무슨 좌와 우의 차이가 있으랴. 하지만 조국은 그들을 이념의 잣대로 차등하고 배척해왔다. 북한 건국에 기여했거나, 월북해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은 인사들까지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그런 전력이 없는 이들도 오로지 사회주의 계열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독립투쟁의 공적을 70년 넘게 외면했다. “또다시 (나라가) 망해도 독립운동을 하면 내가 개다라는 어느 독립운동가 후손의 외침에 떳떳지 못한 역사는 온전한 것일 수 없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위해 몸 바쳤던 이들에게 덧씌운 현세의 편견과 이념의 잣대를 벗기는 일. 그것이 곧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우리 시대에 주어진 책무일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에서는 송종현이 활동했던 신간회 창립 92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신간회가(新幹會歌)가 낭독됐다.

우리의 웃음이 피어날 때마다 또다시 소생하는 우리 이천만. 빛나리라 삼천리 무궁화 동산, 잘 살아라 이천만 민족아.”

정부는 정처 없이 외로이 떠도는 독립운동가의 고혼(孤魂)을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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