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근 데 왜 피라미드야
지구는 둥근 데 왜 피라미드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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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얼마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젊은 나이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 사고는 필자에게도 통절한 분노가 느껴졌던 사건이었다.

수많은 작업 인부들이 드나드는 발전소 현장을 잘 아는 필자로서 그동안의 사고는 당사자의 부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실상은 하청에 재하청에 의한 위험의 외주화로 비용 절감(인원감축)을 위해 21조로 다녀야 할 현장을 한 사람이 다니게 했기 때문이었다. 고 김용균씨는 현장을 아는 발전소 직원이라면 얼씬도 안 했을,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같은 곳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제주에서도 비슷한 사고로 생수 공장에서 현장 실습으로 일하던 고등학생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사업주는 안전하게 보호하며 일머리를 잘 가르쳐줘야 할 산업실습생을 한낱 일꾼으로만 취급했다.

우리는 세월호 이후 일련의 비극 사건들을 통해 안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의 무심함을 일깨워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은 민주주의 시대에 번창한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위대한 비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16세기 대영제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세계 4대 비극작가로 일컬어지는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그리스 아테네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와 아테네 비극작가들은 시민들에게 인간의 본질과 주인의 역할, 민주주의의 가치와 그 체제의 우월성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영제국은 의회민주주의를, 기원전 8세기에 인구 30만명에 불과했던 작은 도시 아테네는 곧 국가의 주인, 내가 곧 내 삶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탄생시킨 최초의 민주국가, 그리스 최초의 제국이다.

비극은 우리에게 통절한 깨우침을 주고 예술 장르에서도 부동의 지위를 차지한다.

고 신영복 교수는 우리가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세상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태안 사고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용균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할 수 있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 작업중지권 보장 등으로 위험근로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근무환경을 법적으로 보장하게 된 것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성장 위주의 삶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는 비극은 비극이고 그렇게까지야 하는 마뜩잖은 감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개인이 부족함을 탓하며 감내해야 하는 세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는 마치 여성의 출산휴가를 2개월에서 3개월로 늘린다는 발표에 남성들이 공평하지 않다는 푸념을 하는 것과 같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결국 개인의 이익이 됨을 모르는 어리석은 푸념이다.

우리는 비극을 통하여 이런 마음 속의 푸념들을 지워내야 할 필요가 있다. 강자로서의 위치를 당연히 여기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할 공동체를 더 강건하게 할 수 있으며 결국은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착취 수준에 가까운 저임금, 위험한 현장에 내 몰리는 사업장,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큰 차별들이 우리 교육 현장에 주는 시그널은 명백하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피라미드의 위치 상승을 위해 결코 하부 구조로는 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치열한 경쟁에 몰두한다. 실업자가 될지언정 힘들고 위험한 일은 아무도 하려 들지 않는다.

최저임금은 올라가고 종업원을 보호할 책임은 더 무거워지면서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장을 가지신 분들이 사업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완급조절이 필요할 뿐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개념에서 분배의 정의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일조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보자.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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