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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보약, 정월대보름
우리 마을 보약, 정월대보름
  • 제주일보
  • 승인 2019.02.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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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진 한의사

예년보다 순순히 물러가는 동장군을 배웅하듯 매화꽃이 활짝 핀 제주.

어느 계절 꼽을 수 없이 몬딱 사랑스러운 제주의 사계 중 봄만의 매력은 꽃과 새싹 그리고 이들을 흔드는 바람일 것이다.

바람에 실려 온 황사가 서북쪽 제주를 옥토로 만들고, 배를 만드는데 쓰는 소나무 삼나무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섬을 덮고, 남태평양을 달려온 짜고 습한 바람이 섬으로 올라와 고사리와 각종 풀들을 키우는 것들이 매년 반복되는 오랜 제주의 풍경이었을 터.

제주인들에게는 오랜 세월 적응된 환경이지만 생소한 이주민들에겐 풍토병이라 불릴만한 병들의 원인이 되었다. 풍토병엔 역시 지역 먹을거리로 신토불이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처방이 될 것이다. 마침 정월대보름이 다가온 만큼 이때 조상님들이 행하셨던 관습 중심으로 봄맞이를 해볼까 한다.

잦은 외침과 지배층의 수탈로 생활에 여유가 없던 우리 조상들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공동체 문화를 갈고 닦아 왔다. 그 중 하나가 24절기 전통문화인데 선조들은 보름 간격으로 해당 절기에 꼭 필요한 투자를 엄선해 영양에서부터 의료 생활 정신문화에 이르기까지 통합 발전시켜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으로 '사후약방문'을 경계하며 선제적 방법으로 효율을 극대화해서 적은 노력으로 공동체를 지탱해왔던 것이다.

일례로 정월대보름을 분석해보겠다.

1. 영양을 위해 '오곡밥'과 각종 '나물'(진채. 말린 나물)과 부럼(음력대보름에 먹는 견과류)을 준비해 먹게 했는데 오곡의 풍부한 영양과 각종 나물의 영양소를 먹게 해서 새해 농사 준비를 시작할 수 있는 원기를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겨울추위를 견디는데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을 터.(임상 경험상 병후 체력의 시작이 되는 '종자체력'을 위한 영양은 소화가 쉽고 낯선 영양이 다양할수록 좋았다.)

2. 육체건강을 위해 '귀 밝기 술'을 먹게 하고, '다리밟기'를 해서 다리 건강을 챙겼고, '줄넘기' '줄다리기' '연날리기' '쥐불놀이'도 하게 했다.

3. 정신건강을 위해 소원을 적은 종이를 '달집'과 함께 태워 그간 쌓였던 액운을 몰아내고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고, '지신밟기'를 집집마다 도는 마을단위의 축제를 통해 각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며 공동체의 건강을 증진시켰고 '더위 팔이'를 통해 여름건강을 미리 대비하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계올림픽 선수가 동계훈련을 열심히 하는 이치를 조상들은 이미 알았던 것이다.

봄철 따가운 햇볕과 바람에 밀려오는 각종 알러지 원인과 건조증으로 인한 피부질환을 대비하고자 나이 수에 맞게 견과류를 씹어 먹게 해서 피부와 치아건강을 돌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서는 굳은 몸을 풀어내고(줄넘기 줄다리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이웃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액운을 몰아내고 화목을 기원하는 단체행사를 통해 겨우내 약해진 공동체의 소통과 연대의식을 다져서 다가올 농번기 품앗이를 할 때 업무효율 향상을 도모했을 것이다.

'연날리기'로는 멀리 내다보고 변화에 대처하는 감각을 전수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야 음식과 의복으로 매일 느끼지만 농번기에 바빠 놀아주지 못할 어른 남자들의 내리사랑을 연날리기를 통해 잠깐이나마 신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터.

쥐불놀이와 '방애'(들불놓기의 제주어)는 용감하게 불을 다루고 농업생산성 향상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놀이와 공연(장관 아닌가!)으로 승화시킨 것이었을 것이다.

표면적의미로는 다리()가 튼튼해지라는 다리밟기도 겨우내 얼었다 녹아 자칫 부실해졌을 마을의 다리()들을 안전 점검케 하는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지신을 밟으며 집집마다 부엌살림과 장독 등 집안 구석구석 마을 사람들이 돌아보게 해서 액운을 몰아내려 했던 것이 미신이었을까? 혹시라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보이면 서로 채워주고 보태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가진 이들이 나눔을 실천하고 부족한 사람을 돕는 보람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게 '액운을 몰아 낸다' 했으리라.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는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마음이 따듯해지니 액운이 들어올 틈도 없었을 터. 혼자 탐욕스런 물질부자를 지양하고, 부족해도 자기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부자를 지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의학을 하면서 적당한 영양과 적절한 복용 시기를 맞춘 음식이 약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정월대보름을 한의학적으로 분석해보니 조상님들의 촘촘하고 쉴 틈 없는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월대보름은 개인건강과 공동체 안녕을 의료와 오락문화에 녹여 살뜰히 챙기는 '수퍼종합건강오락버라이어티쇼'였다. 이것이 24절기중 하나라는 사실이 전율케 한다. 남은 23 절기도 의미를 잘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가난을 물려주는 것보다 물려줄 문화유산이 없는 것이 후손에게 더 미안한 일일 터.

이처럼 전통문화가 부가 편중되고, 저출산, 고령화, 혐오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오늘의 대한민국과 제주에 꼭 필요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뉘우침에 한의학과 전통문화를 계승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리며, 그 감사한 뜻이 제주일보 독자들 댁에도 전해지길 기도해본다.

설이 집안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마을의 명절이라 한다. 설은 가정에, 대보름은 공동체에 보약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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