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기획] 엽서 속으로 떠나는 110년 전 시간여행
[제주일보 기획] 엽서 속으로 떠나는 110년 전 시간여행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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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1900년대 초반) 러일전쟁 풍자 엽서.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1900년대 초반) 러일전쟁 풍자 엽서.

어떤 계기로 집안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버려야 할지 말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다. 결정하는 과정 중에 그 물건과의 추억이나 인연이 슬며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 물건과의 이별은 이미 없던 일이 되기 십상이다.

요즘 일본 정리의 여왕곤도 마리에(近藤麻理 {)가 말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더난출판사, 2012) 라는 집안 정리의 기준이 유행한다고 한다. 주변에 있는 물건들 중에 사연이 없는 것이 어디 있을까만은 그녀의 말처럼 여전히 설렘이 있다면 그것과의 인연이 그만큼 깊은 것이리라.

생업이 헌책방이니 당연히 늘 수 많은 책들과 함께 하지만, 그 중에도 어쩌다 눈에 띌 때마다 가슴이 더 콩당콩당 뛰는 것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대부분 그 만남의 과정이 아주 특별했거나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품은 지 오래된 것들이다. 늘 설렘이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지난해 그 무더운 여름날 일본에서 제일 큰 골동축제에 갔다가 우연한 계기로 또 하나의 설렘을 만날 수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전부터 거래가 있어서 잘 아는 골동상 한 분이 당신과 가깝게 지내는 열심히 하고 실력 있는 젊은 상인 몇 사람을 소개시켜 주시겠단다.

혼자서 출장을 간 필자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으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외려 그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며 이런 저런 업계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됐다.

이튿 날 전날 만났던 것도 인연인 데 싶어서 조그만 거라도 하나씩 갈아줄 마음에 그 친구들의 부스를 찾아갔다. 두 친구에게선 일제 강점기 지도 몇 장을 사고, 남은 한 친구를 찾아 갔다가 그 설렘을 만났다.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1900년대 초반) 겉표지(앞).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1900년대 초반) 겉표지(앞).

가죽 장정으로 된 표지에는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데 겉으로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100여 년은 넘었을 것으로 보이는 낡은 표지를 열고 보니 대부분 1900년대 초 유럽(주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우편엽서들로 빼곡했다. 한 쪽마다 같은 시리즈 엽서 3장씩 모두 480여 장이 수록되어 두께가 9나 되는 앨범으로 당시 일본의 한 수집가가 정성을 들여서 모은 티가 확연했다.

엽서를 만든 소재도 종이는 물론 가죽, 금속, 나무, 수지 등으로 다양하고, 표현 기법도 인쇄된 것은 물론 직접 그리거나 동판화, 사진(채색 포함), 압화(押花), 자수(刺繡), 직조(織造)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표현한 것들이었다. 수록된 내용도 당시의 풍경이나 풍속, 미술품, 조각, 인물, 꽃 등으로 다양한 데 그 중에는 러일전쟁을 풍자한 엽서 6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 나오는 엽서들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고, 1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음에 쏙 들었지만 높을 것으로 보이는 가격이 문제였다. 하지만 필자가 왜 자신의 매장에 들렀는지 잘 아는 듯한 그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다 적당한 가격을 제시했고 가까스로 인수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좋은 인연들이 겹치고 겹쳐서 힘들게 품에 안긴 놈이라 언제 봐도 즐겁고 설렌다.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1900년대 초반) 직접 그린 엽서.
엽서용 앨범’(Album pour Cartes Postales)(1900년대 초반) 직접 그린 엽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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