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리공원에 서서
방일리공원에 서서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9.02.1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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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방일리공원이 도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공원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노형2지구 도시개발사업 지구에 자리한 지극히 지역적인 소공원인 까닭이다.

제주한라대학교 길 건너편의 소공원이라거나 탐라도서관 앞 소공원이라고 설명해야 위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 방일리공원은 기존의 나무가 우거져 있는 수림지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공원이 조성됐고, 탐라도서관과 이어져 있어 얼핏 보기에 잘 가꿔놓은 도서관 앞마당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 때문에 아직도 방일리공원이라고 하면 낯설어 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도심 속 근린공원이 인근 주민뿐 아니라 도민들의 관심 속으로 불쑥 들어섰다. 도내 대학생들의 노력으로 광장에 자그마한 소녀상이 생기면서부터다.

2015년 12월 19일 제주대학교 등 도내 4개 대학생들로 구성된 ‘2015 제주,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 건립추진위원회’는 방일리공원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비(평화의 소녀상)’를 세웠다. 평화나비 콘서트와 모금 운동 등을 통해 한푼 두푼 건립비용이 모아졌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와 도민들이 힘을 보탰다.

제주 평화비는 소녀가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가로 180㎝, 세로 160㎝, 높이 150㎝로 제작됐다. 전 세계에 평화의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머리카락 한쪽 끝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닥에는 현무암으로 일제 식민지배 암울함의 그림자를 표현했고, 제주4·3을 의미하는 동백꽃도 새겼다.

그러나 ‘평화의 소녀상’은 초기부터 시련을 겪었다. 당초 일본총영사관 앞으로 계획했던 부지는 외교문제 비화 가능성과 상징물 설치에 대한 규정 미비 등을 이유로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후 소녀상 훼손사태를 겪으면서 안전 관리에 대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첫 단추를 잘못 뀄기 때문일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청소년·대학생·청년 네트워크 ‘제주평화나비’가 요구하고 있는 공공조형물 등록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평화나비는 소녀상 훼손 시 처벌 등 체계적 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공공조형물 지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2년 전 이맘때 지난 대선에 출마했던 이재명 성남시장(현 경기도지사)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청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분에 시청을 한 바퀴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시청광장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제주에서 건립 당시의 논란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시청광장에 자리한 소녀상을 접하자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지금 생각해도 성남시의 소녀상은 성남시가 주민들의 뜻을 모아 세웠기에 안전을 고민해야 하는 제주의 소녀상과는 형편이 딴판일 수밖에 없겠다.

지난 주말 모처럼 방일리공원을 다시 찾았다. 재난안전문자를 통해 중산간에는 눈이 쌓인다는 차가운 날씨였다. 소녀상은 여전히 혼자였지만 도내 대학생들이 마련해준 파란 털모자와 목도리, 담요를 두르고 따뜻하게 겨울을 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가져온 국화 한 송이와 꽃들도 함께 해 결코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세우고 대학생들이 돌봐온 소녀상을 언제까지 대학생들에게만 맡길 것인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다. 정부도 지자체도 정작 해결해야 할 일은 뒤로 하고 나름 새롭고 멋있는(?)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일까.

평화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소녀의 머리카락은 역사의 거센 바람에 흩날리지만 오늘도 평화와 인권을 위해 꼿꼿이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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