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는 법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는 법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07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도서]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영화 ‘그레이트 뷰티’ 스틸컷.
영화 ‘그레이트 뷰티’ 스틸컷.

어느 시절에 관한 희미한 지도를 손에 쥐거나, 이제는 더 이상 같은 거리에 있어주지 않는 사람의 사사로운 기억을 사사롭지 않게기록해두는 건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러므로 당신들이 괜찮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작가의 말 일부

소설가의 본분은 여기저기 흩뿌려진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서 그 파편들을 퍼즐처럼 맞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펼쳐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작가는 기억의 한 모퉁이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거나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기억하는 일은 언젠가 망각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세상에서 영원한 건 없다. 아주 소중한 추억이라고 해도 아주 충격적인 것을 목격했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거나 무뎌진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춤을 추며 말없이에서 주인공 나는 할아버지의 유품, 말하는 로봇이 따라하는 할아버지의 말투에서 함께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순간들을 그려본다. 결국에는 로봇이 고장나자 주인공 나는 로봇을 선뜻 버리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또 다른 단편 오직 그 소년과 소녀만이는 과거에 겪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을 리셋한 연인의 이야기다.

모든 기억이 지워지자 둘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난다. 그 연인은 둘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함께 가봤다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그 공간에서 함께 했던 순간들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그렇게 어떤 것을 망각한다는 것은 마음 속 어딘가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위 단편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도 무너지지 않으려 작은 몸부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 2013)’의 주인공 젭은 성공한 인물로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즐기며 살고 있지만 첫사랑의 부고 소식을 듣고 점점 허무해져가는 삶에서 지금은 희미해져버린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올리기 위해 로마의 거리와 유적지를 배회한다.

위 영화처럼 늘 지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사람들, 물건들 심지어 추억들을 호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불러내고 불러보면서 아직은 살아있구나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확인해보는 것이 분명하다.

잊어버리면 잃어버리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지점들에 대해서.

<지기룡 동녘도서관 사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